그루터기교회, 중증장애인 신앙공동체로 헌신
재정 40% 이상 구제와 선교, 희망의 싹 키워

그루터기교회는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모두 중증장애인들이다. 이들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예배를 드리지만 5년째 신앙공동체를 이뤄 말씀으로 양육받고 교제하며 구제와 선교를 하고 있다. 사진은 주일예배를 마친 안성빈 담임목사(오른쪽 앞줄 세 번째)와 성도들의 모습.
그루터기교회는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모두 중증장애인들이다. 이들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예배를 드리지만 5년째 신앙공동체를 이뤄 말씀으로 양육받고 교제하며 구제와 선교를 하고 있다. 사진은 주일예배를 마친 안성빈 담임목사(오른쪽 앞줄 세 번째)와 성도들의 모습.

혼자서는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목사와 성도들이 5년째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루터기교회(안성빈 목사)는 중증장애인 목회에 소명을 받은 안성빈 목사가 2015년 3월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하자마자 설립했다. 현재 예배 장소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가든파이브 테크노관 6층으로, 평소에는 사단법인 로이사랑나눔회라는 장애인단체 사무실로 쓰이는 곳이다.

매주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성도들과 활동지원사 7~8명이 모인다. 비록 성도 수는 적지만 참석자들이 휠체어에 의지해 있기 때문에 7평 남짓되는 예배실은 늘 차고 넘친다. 활동지원사들이 옆에 붙어서 성경책도 넘겨주고 찬송가도 찾아줘야 하지만 예배에 대한 갈급함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크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중증장애인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동일한 형편에 있는 동료 성도들을 매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루터기교회를 설립한 안성빈 목사는 오른손 일부 외에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1998년 목뼈 속에 종양이 발생해서 경수손상장애인이 되었다. 안 목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좌절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내고 목회자로서 새롭게 출발했다.

안성빈 목사는 “중증장애인인 제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염려를 해주셨다”면서 “실제로 목회를 해보니 그분들이 걱정해주셨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그러나 중증장애인들이 일반교회에 다녔을 때 교회가 잘 대해줬으나 늘 마음 한구석이 편안하지 않았다는 성도들의 고백을 들을 때 교회를 세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면서 “나 자신도 몸이 자유롭지 못하나 늘 감사하면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목사의 이야기처럼 그루터기교회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이전에 일반교회에 출석을 했다. 소속했던 교회가 사랑으로 돌봐주었으나 성도들은 그런 친절에도 불구하고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한다.

사소한 일 가운데 한가지 예는 예배 전후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탄 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데 예배 시각에 맞춰 발을 동동구르는 성도들이 자신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죄송했다고 한다.

안성빈 목사는 이러한 중증장애인 성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고 받은 은혜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안 목사의 설교준비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봄 야유회의 한 장면.
봄 야유회의 한 장면.

최근에는 설교 내용을 구상해서 말을 하면 활동보조인이 타이핑을 해주고 있다. 타이핑을 한 내용을 읽어주면 들어보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그는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해서 메모장 프로그램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문자로 풀어서 노트북 컴퓨터로 옮겼다.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치면서 수정을 거듭한 뒤 설교문안을 완성했다. 참고서적이나 주석도 봐야 했기 때문에 안 목사의 설교준비 시간은 일반인보다 몇 배나 더 소요됐다. 주중에는 장애인단체인 로이사랑나눔회 대표로 일하고 주일에는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육신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소명이기에 감당해 왔다.

그루터기교회는 오는 3월이면 설립 5주년을 맞는다. 사람들은 그루터기교회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을 은혜라고 말한다. 안성빈 목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었던 몇몇 교회들과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교회이기에 늘 도움을 받는 처지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교회는 설립 때부터 재정의 40% 이상을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올해도 신대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을 돕고 있다. 교회의 재정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안성빈 목사가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있으며, 예배 장소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회는 얼마 안되는 헌금과 후원금을 꼭 필요한 예배와 교제를 위해서 쓰고 나머지는 아낌없이 외부로 나눠주고 있다.

교회 이름을 그루터기라고 지은 것은 이사야 6장 13절에서 착안했다. 나무가 베임을 당한 뒤 남게 되는 그루터기는 죽어있는 듯 하지만 놀랍게도 거기서 다시 싹이 난다. 사람들은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는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루터기교회는 그런 인식을 보기 좋게 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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