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이 그리워 뒤척이는 아기들 길거리에 버려진 어린 생명, 입양아란 희망 믿고 삶 이어가 3개월 뒤면 또다시 낯선 곳으로… “따뜻한 ‘정’ 가장 필요”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고만고만한 아기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부리나케 달려온 복지교사들이 쨍쨍대는 아기들의 입에 일제히 젖병을 ‘꽂는다’. 잠이 깬 녀석들은 덩달아 울기 시작하고 안고 얼러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가는 사이, 아기들은 이내 잠잠해 진다. 개중엔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갚은 잠에 빠진 녀석들이 있다. 무슨 꿈을 꾸길래 저리도 고단한 잠에 빠진걸까? 아직 눈에 익지 않은 엄마 아빠의 꿈을 꾸는걸까? 작은 숨소리, 가녀린 몸짓… 아기들의 까닭없는 움찔거림에도 슬픔이 저며온다. 이른 아침부터 채 펴지지 않은 얼굴로 천정을 향해 누워 있는 어린 생명들.
아동일시보호소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성탄절을 맞아서인지 여느 때보다 보육교사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하다. 이따금 보호소를 찾는 반가운 손님들이 연말임을 느끼게 한다. 1년동안 자판기 동전을 모은 거라며 쑥스럽게 금일봉을 내미는 손님도, 분유 박스를 쌓아 놓고 어색하게 기념 촬영을 하는 후원자도 모두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불황탓에 이런 풍경은 점점 더 보기 어려운 모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고 알콜로 손을 깨끗히 소독한 뒤 아기들을 만나러 방으로 들어갔다. 내무반처럼 일렬횡대로 이어진 침대 위로 아기 천사들이 꼬물꼬물 누워 있다. 방바닥에 누워있는 아가들은 분명 침대가 부족하기 때문일텐데 비어 있는 침대가 여럿 눈에 띄었다. 침대 주인이 모두 병원에 갔기 때문이다. 대개 화장실과 터미널 귀퉁이에서 태어나고 버려지기에 그로인한 장애를 앓는 심각한 아기 환자들이 많다. 버려진 것도 서러운데 요즘같은 계절엔 파상풍, 폐혈증, 뇌손상과 같은 치명적인 병마들이 어린 생명들의 목덜미를 옥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들은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악조건 가운데 유기됐음에도 병원신세를 지지 않기에 앞으로 ‘입양’이라는 새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입게 된 아기들은 보호소에 있는 지금이 인생 중에 맛보는 유일한 호강이자 행복일지 모른다. 유기아동들의 희망인 입양이 어려울 뿐더러 장애인 시설로 보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기들 머리 맡엔 새로 지은 이름과 혈액형, 유기일 및 입소일이 적혀 있다.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발견된 수진이는 성남에서 발견돼 성이 ‘성’씨고 여주 모 산부인과 앞에서 버려진 무현인 그래서 ‘여’씨다. 커서 잘 되라고 대통령의 이름을 여씨에 연결시켰다. 선우는 수원시 권선구에서 발견돼 이름이 권선우다. 이처럼 유기된 장소로 아기들의 이름이 작명(?)되므로 아기들은 새롭게 태어난다.
이 아기들 속에 ‘혜석이’가 있었다. 머무는 내내 깊은 잠에만 빠져 있던 오혜석. 결국 눈 뜬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혜석이는 오산시 어느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태어난지 두달된 것으로 추정되는 혜석이는 지난 12월 10일 발견돼 매스컴의 주인공이 되면서 이곳 아동일시보호소로 입소했다. 낮고 천한 세상에,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처럼 혜석인 냉기가 흐르는 화장실 냉바닥에서 태반과 함께 발견됐다. 버려지는 아기들이 늘 그렇듯 모정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메모 한 장 없었다. 무정한 어른들에 의해 버려진 유기아동들의 전형이다.
24시간 울고 먹고 싸고 자고 웃고… 버려진 것 외에 유기 아가들의 하루는 여느 아기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다. 길어봐야 3개월 후면 더이상 머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환경으로 보내져서 입양자를 기다려야 한다.
경기도남부아동일시보호소(소장:심양금)에서 살고 있는 유기아동은 모두 73명. 이들 중 태어난지 두어달 밖에 안된 아기가 95%에 달한다. 예년에 비해 많아진 수치라는 사실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믿어지지 않는 건 점점 더 많은 아기들이 이 추운 계절에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 경제난(44%)과 미혼모 문제(43%)로 인해 버려진 아동의 수가 작년 한 해 1만 222명이었다고 보건복지부는 발표한 바 있다. 외환위기에 비해 1000여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연령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랑도, 자식도 버려지는 가혹한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 유기아기들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생은 그저 막막하다. 이 기막힌 얘기를 전하는 소장의 모습 속엔 오히려 미소가 섞인 담담함마저 감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이들이 바로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장을 태어나자마자 박탈당했으니 이들보다 더 불쌍한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수년간 버려진 아기들을 돌봐 온 보육교사들도 한 이야기를 강조했다.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사람의 온기라고. 어차피 척박한 일생을 살아가게 될 인생이라면, 잠시라도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제대로 맛보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보육교사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는 대목이다.
“재정적인 지원도 좋고 선물을 주시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훈훈한 사람의 정이지요. 잠시라도 아기들을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일 수 있는 것, 정성으로 몸을 씻기는 것, 그리고 아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이러한 것들이 유기아동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필요입니다.”
술렁거리던 하루, 고만고만한 아기들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무정한 어른들의 숱한 허물들을 가녀린 몸에 고스란히 담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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