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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상에, 육거리가 있다니[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 김대훈 목사(부산 초량교회)
  • 승인 2018.12.26 14:49
  • 호수 2182

내 머리 속에는 ‘천안 삼거리’라는 말이 각인되어 있다. 참고로 나는 천안을 가본 적이 없고, 천안에 삼거리가 어딘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유명한 게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찌 되었든지 내 머리 속엔 ‘천안’하면 ‘삼거리’다. 천안에만 삼거리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널려있는 것이 삼거리다. 삼거리만 있겠는가? 사거리도 있다. 사거리만 있겠는가? 오거리도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도 오거리는 꽤 있다. 이제 삼거리, 사거리, 오거리에서 하나만 더 나가보자. 육거리는 어떤가? 육거리는 찾기가 꽤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부산 초량에 육거리가 있다. 세어보면 진짜 육거리가 맞다.

6.25 한국전쟁이 그치면서 부산 인구가 급속히 불어난다. 그래도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아갈 돈을 벌 수 있는 항만 부두와 신발공장 등의 공단이 들어서면서 인구는 더 늘어난다. 부산에 밀려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 동네가 초량이다. 한 마디로 초량은 지내기가 만만한 동네였고, 만만한 만큼 편안했던 것이다. 육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곳에 생겼다. 길은 계획적인 공사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오랜 세월 밟고 다닌 곳이 자연스레 길이 되기도 한다. 초량 육거리는 후자(後者)가 녹아 있는 길이다.

▲ 초량 육거리에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이들을 응원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육거리는 초량의 중심가요, 가장 붐비는 번화가다. 육거리를 조금 설명하면 이렇다. 1번 거리에는(편의상 붙인 번호) 돼지국밥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있다. 인기가 좋다. 똑 같은 국밥인 것 같지만 사실 맛은 조금씩 다르다. 이집 저집 들락거리다 마지막엔 제 입맛에 맞는 국밥집의 단골이 된다. 돼지국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여기에 있다. 양념이 된 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먹는데, 맛이 천하제일이라 손님들이 제법 많다. 어쨌든 육거리의 1번 거리 주인공은 돼지다. 돼지한테는 참 미안하지만 돼지가 한쪽에선 뽀얀 국물이 되고, 한쪽에선 구이가 되어서 지금까지 초량사람들이 먹고 살았고 또한 먹여 살렸다.

2번 거리에는 한의원, 병원, 사진관, 그리고 부산고등학교 입구에 꽤 오래된 서점이 있다. 그래도 2번 거리를 주도하는 것은 줄지어 늘어선 작은 식당들이다. 처음엔 기사식당으로 시작하였는데 소문이 나면서 가게들마다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다. 메뉴는 다르지만 싸고, 많이 주고, 맛이 있으니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의 3원칙이다.

이쑤시개를 손에 들고 잔뜩 부른 배를 만지면서 나오는 남자에게서 소소한 초량 사람의 행복을 본다. 노동과 땀, 그 뒤에 맛있게 먹는 밥 한 그릇, 어쩌면 우리가 찾는 행복이다. 파랑새를 언제나 멀리서 찾는 사람들에게 초량 육거리는 파랑새가 당신 곁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3~6번 거리에는 도로를 따라서 부동산, 칼국수집, 아귀찜 가게, 편의점, 휴대폰 가게, 새마을 금고, 미니 옷가게, 동문병원, 학원 등등 없는 게 없다. 그리고 모퉁이 지점에 입지전적인 한 사람이 있는데, 조그만 ‘땅콩빵’을 만드는 남자다. 오래전에는 리어카를 놓고서 땅콩빵을 만들었다. 한 겨울 저녁에도 어김없이 남자의 땅콩빵 리어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떨 때는 아내가 아기를 업고서 구워냈다.

이제 아기는 청년이 되었고, 부부는 리어카를 처분하고 반듯한 가게를 얻어서 땅콩빵을 굽고 있다. 성공한 것이다. 비록 내 가게는 아니지만 겨울바람 맞고 꽃을 피우는 빨간 동백이 고맙듯이, 힘든 세월의 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 그 부부가 고맙다.

그런데 여기 비밀이 하나 있는데, 땅콩빵 가게가 성공한 비결은 맛이 아주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한 초량 사람들이 너도나도 막 사먹어 준 것 결과란다. 이처럼 육거리를 지나는 초량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응원할 줄 아는 사람들, ‘훈남훈녀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다. 초량 육거리엔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초량 육거리에는 거의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거리 숫자가 많으면 사고도 더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정반대다. 육거리라는 복잡함만큼의 조심성과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초량 육거리는 복잡한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다.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아름다운 동화(童話)와 지향해야할 철학이 녹아있는 곳이다.

김대훈 목사(부산 초량교회)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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