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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총회와 꾼총회 갈림길

과거 우리는 소위 ‘꾼’들에 의해 농락당해왔습니다. 이들은 교회 지도자라는 탈을 쓰고 총회와 노회, 교회, 개인을 유린했습니다.

브로커 또는 해결사로 불리는 꾼은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분간하기 힘듭니다. 거룩한 척, 깨끗한 척, 바른 척을 타고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꿀벌은 꽃밭에 모이고, 똥파리는 화장실에 꼬이듯이, 꾼은 사건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그 꾼도 사건이 있는 곳에 항상 손을 내밀었습니다. ㅁ교회 분쟁사건, ㅅ교회 분쟁사건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해당 노회원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는데 그가 왜 교회분쟁에 기웃거렸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분쟁은 돈이 됩니다. 사건이 복잡하고 분쟁이 격할수록 판돈이 더 커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꾼은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양측에 손을 벌렸다가 호되게 당했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꾼들은 교회 내부의 일에도 깊숙이 관여합니다. 담임목사 청빙뿐만 아니라 예배당 건축에도 입맛을 다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꾼도 교회 관련으로 이런 저런 소개비를 받아왔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예배당 건축에 물의를 일으켜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꾼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조장하려고 듭니다. 그리고 총회는 이들이 저질러 놓은 폐단을 해결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단언컨대 이들 때문에 총회는 뒷걸음질만 쳐왔습니다.

감사한 것은 최근 총회가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103회 총회에서는 교회분쟁 논란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해마다 골머리를 앓던 사안들도 기를 못 폈습니다.

이제는 그 분위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먹은 자를 부러워하고, 좋은 자리를 탐하는 분위기부터 도려내야 합니다. 더불어 꾼들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따지고 보며 인물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총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성총회와 꾼총회의 갈림길,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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