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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총회는 짧고 경건은 길다권성묵 목사(청암교회)
▲ 권성묵 목사(청암교회)

2018년은 도르트 회의가 열린 400주년이다. ‘참으로 성경적이고, 개혁적인 게 무엇인가.’ 80여명의 신학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서 150번 이상 회의를 했다. 그리고 나온 것이 튤립(TULIP) 이라고 부르는 은혜의 교리들이다. 이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비성경적인 흐름을 몰아 낼 수 있었다. 이처럼 알아볼수록 우리 교단의 뿌리는 성경적이고, 개혁적인 역사다.

역사적인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 103회 총회가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막을 올렸다.

먼저, 지난 회기를 은혜롭게 이끌어온 전계헌 총회장과 임원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출범하는 이승희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모두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보낸다. 산적한 현안들이 통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

이번 총회에 많은 안건들이 논의 되고 있다. 필자가 기억해보면 아무리 훌륭한 회의장이라도 4박 5일의 총회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적인 움직임이 제약되고 개인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회의 부름 받고 나와 수고하는 총대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사한다. 그런 헌신으로 우리 총회가 건강하고 바르게 서가는 줄 믿는다.

더욱이 총대의 자리가 힘든 것은 망자존대하고 표리부동한 정치꾼들이 발언대를 독차지하고 전횡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이 부패하고 돈을 밝히는 무리가 적지 않다. 이 온갖 군상들은 불사조인지 철새인지 알 수가 없다. 징계를 아무리 받아도 죽지 않고 살아나거나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때가 되면 다시 등장하니 말이다. 이들의 말은 얼마나 장황한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챙기려는 속셈인지 모르겠다.

50여년 가까이 사역을 한 필자는 다 보았다. 마음이 아프고 성도들 보기에 부끄럽다. 정치꾼들의 주장 뒤에는 성도들이 상상하기 힘든 많은 금품이 오가더라.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두나미스를 붙잡으라고 하면서도 정작 총회만 오면 온갖 금품의 두나미스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이권에 연루되어 헛된 푯대를 향해 달음박질한다. 경건의 옷을 벗어버리고 거칠고도 꼴사납게 말이다. 자기의 신앙과 인품을 공개적으로 갉아먹고 짓밟는 줄도 모른다.

안타깝다. 전념해야 할 푯대를 상실한 걸로 보인다. 자기 목회에서는 뜻을 펴지 못했으나 총회 때마다 단골로 나와 과대 포장된 말솜씨로 헛된 명예를 탐한다. 이를 통해 심리적 보상을 받는 걸로 보인다.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른다. 대다수의 선량한 총대들은 다 알고 있다. 이들의 목표를 말이다. 회전문처럼 돌아가며 상비부장을 맡거나 총회 후 조직될 특별위원회 구성원이 되는 데 혈안 되어 있다.

세속주의적 질서를 따르는 고지론자(高地論者)가 되지 않고 순수하게 성경대로 살 수 있는가? 우리 성도들은 고민한다. 보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재하다. 성경대로 기업하고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하형록의 ‘P31’이라는 책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업도 성경대로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는데, 왜 영적 리더들이 모인 총회에선 이런 몸부림이 없는가. 실망스럽고 통탄할 노릇이다. 우리 교단도 성경대로 총회를 해서 성공적이었다는 아름다운 간증이 기록되면 참 좋겠다.

경건의 옷을 벗어 던지지 말자.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물이 되어 예배 같은 회의, 회의 같은 예배를 드리자. 양심을 팔아먹고 진실을 가장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적 처신을 삼가자. 특별히 금품수수의 오점을 남기지 말자. 희망적이게도 이번 총회에는 개혁적이고 성경적인 총대들이 대다수를 이룬다고 들었다. 신앙의 세대가 바뀌는 즈음하여, 깨어있는 총대들로 인해 변화의 시발점이 되길 확신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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