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나온 책 / <신>

이 책을 손에 들면 목차를 제외하고 87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놀라고, 책에서 다룬 방대한 분야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게다가 서양사, 문학, 회화, 종교, 철학, 음악, 과학 등을 넘나들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게 우리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데서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신>(김용규 저, IVP)은 서양문명의 심층을 ‘신’이라는 코드로 풀어낸 대중 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대중을 향해서 “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서양 문명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길이자, 우리가 삶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담대히 외치고 있다.

저자는 신에 대한 탐구를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은 존재다‘, ’하나님은 창조주다‘, ’하나님은 인격적이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네 개의 명제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존재증명, 창조의 목적과 방법 문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대립과 균형,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하나님의 인격성과 하나님의 부재, 인간의 정의와 하나님의 공의, 질병이나 자연 재해 같은 자연 악에 대한 해석, 하나님의 유일성과 삼위일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의 조화, 기독교의 배타성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의 주요 주제와 논점을 제시하고 규명한다.

저자는 성경에서부터 하나님의 존재증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사의 다양한 영역을 통해 신의 존재를 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든 탐구 과정을 ‘이중적 논법’과 ‘양립주의’라는 사유 방법을 채택해서 전개한다. 즉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는 안셀무스적 태도를 견지하므로써 학문과 종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에 기초한 서양문명이 서로 상반되는 헬레니즘(그리스 철학)과 헤브라이즘(히브리 종교)의 위대한 종합으로 탄생했듯이, 저자의 이중적 논법과 양립주의는 “우리의 이성이 가진 한계를 훌쩍 뛰엄어 생각의 지평을 확장하고 내용을 심화하여 우리의 정신을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저자는 주장을 학문적 차원으로 멈추지 않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끈질기게 묻는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서양문명은 애석하게도 하나님과 그의 이름으로 언급되던 ‘최고의 가치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맞고 있다”면서 “이것이 서양문명을 위기로 몰아가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서양문명은 하나님 대신 자연과 인간에 눈을 돌려 그것들을 연구하고 표현했으나, 최고의 가치를 버림으로 최고의 가치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었던 세속적 가치(이성, 개인의 행복, 사회진보, 민중해방, 인본주의)마저 위기를 맞았다고 설파했다. 저자의 메시지는 이처럼 단호하고 근본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하고 배제하려고도 했던 인류역사를 풍성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저자에게 강요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저자는 겸손한 태도로 “이것을 취하되 저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신 존재를 향한 인류의 모든 노력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것이 하나님을 더 풍성히 알게 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