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니송, 울림은 크고 감동은 오래 남았다

‘작은음악회’ 오케스트라 공연, 수준 높은 연주로 큰 은혜 더해

▲ 올해 목사장로기도회 최고 히트상품은 심포니송오케스트라의 <작은 음악회>였다. 심포니송은 감동은 물론 영성까지 선사하여 호평을 받았다. 함신익이 지휘하는 심포니송의 연주에 맞춰 소프라노 손지수가 토스티의 ‘기도’를 열창하고 있다.

감동이 묵직했다. 사실, 이번 목사장로기도회에 심포니송오케스트라(이하 심포니송)를 초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관심을 갖는 이들도 별로 없었다. 여러 가지 순서 중 <작은 음악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양념’이란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포니송은 단박에 불식시켰다. 공연장이 아닌 예배당에서 ‘브라보’, ‘앵콜’ 같은 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심포니송의 위력은 강했다.

스코틀랜드 민요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포문을 연 심포니송은 교회음악에 착착 감기도록 편곡하여 청량감이 더했다. 지휘자 함신익이 곡을 소개하고 연주가 시작되자 40여 명의 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중들은 강대상 앞 대형 스크린에 써 있는 가사를 보며 숨을 죽인 채 심포니송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 같은 비참한 사람도 구해 주셨다”는 성공회 신부 존 뉴턴의 자전적 고백을 함께 읊조리며 음악을 공유했다.

이어 신예 소프라노 손지수가 토스티의 ‘기도’를 들고 나왔다. 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하던 1970년대 고등부 찬양제에서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그런 찬양이 손지수를 통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예는 신예가 아니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는 지휘자의 후문이 거짓이 아니었다.

▲ 지휘자 함신익이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표방하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연주에 앞서 곡마다 간단 명료한 해설을 곁들여 청중들이 음악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왔다.

“신부들은 죽고 나만 살았지만 실제로 나는 죽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남미 밀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희생당한 동료들은 떠올리며 얘기하던 가브리엘 신부가 오버랩 되면서 영화 <미션>의 오보에 연주가 펼쳐졌다. 가브리엘 신부는 원주민에게 포위되었을 때 적막감이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오보에를 불었다. 그런데 오늘은 심포니송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연주하고 있다. 마치 복음의 전령자처럼.

테너 이명현은 소리가 맑았다. 독일 함부르크 음대 최고연주자과정 만점 졸업자답게 시원하게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을 소화했다. 다양한 팝페라 가수나 대중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지만 이명현은 기교 없이 담백하게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더 울림이 컸는 지도 모른다.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당신이 나를 일으켜 더 큰 내가 되게 해 주신다” 심포니송오케스트라와 이명현은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대한민국 시시엠의 원조 박종호가 불러 히트한 ‘하나님의 은혜’ 듀엣도 격조가 있었다. 소프라노 손지수와 테너 이명현은 서로가 받쳐주며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노래로 간증을 ‘선포’했다.

그리고 심포니송은 피날레로 베토벤의 ‘운명’을 멋지게 연주했다. 페르마타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이 대곡을 함신익의 심포니송은 작은 음악회에 팀파니와 호른까지 동원하여 암흑에서 광명으로 길을 밝히는 운명을 장대(壯大)하게 소화했다. 그래서 울림과 잔상은 너무 깊고 오래 남았다.

한 마디로 심포니송의 이번 연주는 웬만한 설교 한 편 보다 은혜가 더 했다. 30분은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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