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교회 교회 구성원들 중 대부분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도 모르고 입문한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부흥 운동을 통해 회개를 경험하게 되었다. 원산 부흥회와 평양의 부흥회에서 회개를 체험한 사람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삶의 변화를 나타냈다. 은혜를 체험한 그들은 첩을 돌려보냈고 술과 아편을 끊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것을 변상하는 삶의 변혁이 일어났다. 이런 일들은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를 높였다. 불신자들은 교회를 좋게 여기고 교회 나가면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것을 상실했다. 지난날 기독교는 자기정화와 윤리적 갱신이 교회의 동력이였기에 3·1운동 당시도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이었음은 만인 공지의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20~30%의 지도력이 교회에서 나왔음을 사가들은 증언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성경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고 평가한다. 오늘 기독교가 회복해야 할 것은 1세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말씀에 대한 진지하고 순수한 열정이다.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은 말씀으로 만족하며, 삶을 말씀에 의존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우리는 이것을 잃어버렸다. 주기철 신석구 손양원 목사의 지도력은 교회 밖까지 영향을 미쳤고 사회적으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보여주었기에 존경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다. 과거 부흥회에서는 회개와 거듭남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이야기하며 신앙의 본질을 강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흥회가 변질 되면서 물질적이며 기복적인 복만 강조하는 타락한 기독교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비본질적으로 변하면서 성도들도 변한 것이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회개의 메시지가 회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지도자들의 모범이다. 선교사들이 회개했을 때 한국인들이 회개했다. 하디가 회개했을 때, 길선주가 회개했을 때, 한국교인들은 회개했다. 목회자들은 회개의 조교가 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목사장로기도회는 지도자 된 우리들이 모두 회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목사장로가 회개가 없는데 평신도들이 무슨 회개를 하겠는가! 삶의 변화가 없는 목사의 설교 장로의 기도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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