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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목회 시대에 맞는 새 부대 준비하자하광민 목사(숭실대 겸임교수, 기독교통일전략연구센터장)
▲ 하광민 목사(숭실대 겸임교수, 기독교통일전략연구센터장)

4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쟁론까지 갔던 한반도의 위기가 대화 국면으로 급반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선정한다면 현재의 일을 해석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항상 변수와 급반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이럴수록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긴 안목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우선 급반전한 이유이다. 북한이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시기의 문제였지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핵무력 완성을 담보로 미국과 담판을 지을 것을 목표로 그간의 ICBM 발사와 핵개발을 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완전한 ICBM급 미사일과 핵의 완성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성급하게 선언한 것은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와의 합의에 의한 경제지원에 속셈이 있는 것으로 분설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끌고 갈 것이다.

비핵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 다음의 수순은 종전선언과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일들로, 어렵겠지만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최대의 국가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며 남북의 인적교류 확대와 경제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하여 할까? 현재 한국교회는 이렇다 할 입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자신들의 좌우 진영논리에 갇혀서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입장이다. 새로워지는 한반도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준비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태동된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 이 양자의 논리에 한국교회의 목소리는 광장의 함성에 함몰되어 표류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한국교회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담론을 제시하고 이끌어 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흥과 연결되어 있었다. 개화기에 들어온 기독교는 조선백성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신이었으며, 이것은 평양대부흥과 연결되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 역시 기독교인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가 주축이 된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부흥을 주셨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새로운 시대정신인 평화와 통일을 붙잡지 못하고 낡은 이념의 진영에 갇혀서 서로를 비난만 할 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정신을 붙들어야 할 때이다. 태극기와 촛불집회의 활동 대상은 국내, 즉 대한민국의 정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과 북, 즉 국가와 국가(남북은 유엔에 정식으로 등록한 독립국가)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때에는 서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국가적으로 임해야 할 때이다. 이 일에 우리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 되어 일어나게 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게 되면 주께서 다시금 이 땅에 부흥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우리 교단 내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 시대정신의 담론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자. 또한 교단 목회자후보생들에게 이 정신을 가르치자. 이들에게는 북한선교가 아닌 통일목회를 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한국교회가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 가자. 이제라도 차근차근히 새 부대를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눅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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