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세계는 증기기관으로 대변되는 산업혁명을 만난다. 제2차 산업혁명이었다. 그 후 세계는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을 만나는데 이것이 1970년이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디지털과 제조업으로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을 만나 생태계의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빛의 속도로 세계를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바뀌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와 밴드 및 트위터 같은 SNS 사용자가 계속 늘어나, 이기적인 경쟁 사회 속에서 살던 세계가 협력과 개방의 시대로 바뀌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관계이다.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 사회의 미학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유창한 언어와 몸짓이 아닌 배려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런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하여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탁월한 역량이 있어도 관계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날이 선 도끼도 손잡이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듯 관계가 세워지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강대상에서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대상 아래에서 성도와 만나는 인간관계이다. 이 관계가 섬김이다.

일제강점기 전라도와 제주도에서 무명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섬김의 삶을 살다간 벽안의 여선교사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식비 3원 중 10전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고아와 과부 빈자들을 위하여 사용했다. 조선의 테레사로 불리며 간호사로 선교사역을 감당한 그녀는 천천히 평온하게란 뜻의 이름 서서평으로 개명한 후 이 땅의 빈자를 위해 섬기다 22년의 사역을 한 후 54세에 영면했다.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영면한 그는 시신마저도 의학해부용으로 주고 이 땅을 떠난 섬김의 사람이었다.

1934년 생을 마감한 그녀의 유품은 담요 한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 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조선에서 22년간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으며 고무신을 신은 채 조선인의 친구가 아닌 조선인으로 살다간 사람, 가난하고 병든 이웃 나환자들을 죽기까지 섬겼던 그녀의 침대에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e)’라고 적혀있었다.

2018년 성공에 목말라 허덕이는 삶이 아닌 섬김의 삶으로 관계개선에 힘을 쏟자. 2만 3000명의 목사 5만의 장로들이 말과 행실과 믿음과 사랑과 정절로 단장하고 인간관계에서 승리하는 한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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