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맘 때가 되면 훈훈하게 달아오르던 ‘사랑의 온도탑’이 냉랭하다. 서울 광화문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12월 10일 16.2도를 기록했다. 불우이웃을 돕는 연말의 대명사 자선냄비가 12월 1일 시종식을 갖고 등장했지만 ‘사랑의 종소리’도 예년만 못하다.

이와 같이 이웃을 도우려는 손길이 저조한 것은 최근에 일어난 이영학 사건과 새희망씨앗 사회복지단체의 기부금 사건과도 연관이 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시민들 사이에 자선단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팽배하면서 기부 포비아(공포증)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 복지단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목표액을 1%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탑의 모금액 목표는 내년 1월 31일까지 3994억 원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기부가 15~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한국교회는 따뜻한 사랑의 온정을 나눌 필요가 있다. 성탄절이 있는 세모(歲暮)가 되면 으레 불우이웃을 돕는 것은 오랫동안 한국교회의 미덕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교회마다 성탄절기 헌금을 모아 독거노인은 물론 소년소녀가장, 노숙자, 장애우 등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각종 방송이나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상당했지만 기독교가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 곳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만큼 교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실천해 왔다.

그런데 사회가 움츠러들면서 교회 또한 예전보다 이웃사랑에 소홀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교회 성장이 정체되면서 교회의 재정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느 조직이나 예산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홍보비와 구제비를 줄이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경상비도 중요하고, 선교나 교육에 투자하는 예산확보도 시급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실천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다시 말해 구제는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옵션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명제(命題)라는 것을 인식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더 이웃을 돌봐야 한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고 해서 기독교인마저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당하게 불우이웃과 어깨동무 하고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힘든 이웃과 함께 가야 한다. 교회가 교회다움은 내가 아닌 우리가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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