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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그 이후 루터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기금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면죄부 판매를 시작한 레오 10세는 1520년 6월 루터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60일 이내에 이단성을 인정하고 1000년 중세교회를 지탱해온 근간을 흔들고 있는 주장들을 철회하라고 경고한다. 이에 루터는 “주여 일어나소서 멧돼지가 거룩한 포도원을 파괴하고 있나이다”라며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고 자신의 입장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교황의 눈에는 루터가 교회를 더럽히는 멧돼지로 보였지만 루터는 자신의 본문을 잃은 교황이 교회라는 포도원을 허는 멧돼지와 여우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찰스Ⅴ)에게 루터재판을 요청한다. 카를 5세는 루터문제로 유럽의 3분의 2나 되는 드넓은 자기제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시 찰스 5세는 독일과 스페인,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나폴리, 시실리, 사르디나, 북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을 모두 지배하는 유럽의 최고 군주였다. 1521년 4월 16일 루터는 신변 안전을 보장받은 채, 카를 5세가 개최한 제국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장소는 보름스(Worms)였다. 이틀이 지난 4월 18일 루터는 카를 5세와 숙명의 만남을 갖는다. 이 만남은 세계 역사상 극적인 만남들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루터는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요, 카를 5세는 중세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카톨릭의 수호자와 개신교 개혁자의 충돌인 동시에 가장 권세 있는 최고의 군주와 가난한 수도사와의 만남이었다.

카를 5세는 루터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문서에 나온 그대의 주장들을 철회하는가?” 이때 루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폐하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저는 수없이 오류를 범한 교황과 공의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제 양심과 성경에서 직접 가르쳐주지 않는 한 저는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제가 여기 섰나이다.”

다음날 4월 19일 카를 5세는 보름스 칙령(Edict of Worms)을 발표한다. “나는 카톨릭 신앙과 전통을 수호하기로 결의했다. 나는 더 이상 루터의 거짓 주장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신변의 위협을 받은 루터는 회의장을 벗어나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는 도중 일군의 병사들에게 납치된다. 발트부르크 성에 안전하게 연금된 루터는 1521년 한해를 보냈고, 그해 9월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시다.(Eine feste Burg ist unser Gott; Our God is mightly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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