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연탄가스 환자, 치료비로 진 빚 갚아

▲ 36년 만에 예수병원을 찾아와 치료비로 진 빚을 갚고 돌아간 윤 할머니의 뒷모습,

75세의 윤진주(가명) 할머니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몹시 불편해 보이는 몸과 달리, 표정은 환했다. 36년 만에 예수병원을 찾아왔다는 그녀의 손에는 돈 100만원이 든 봉투가 들려있었다.

1981년 11월, 당시 39세의 윤씨는 예수병원 응급실에 연탄가스 중독 환자로 실려 왔다. 남편과 헤어져 홀로 딸을 키우며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열 살짜리 딸만 먼저 세상을 떠나고, 윤씨는 결국 살아남았다.

당시만 해도 예수병원은 전북지역에서 유일하게 연탄가스 중독을 치료하는 산소치료탱크를 갖추었던 시설이었다. 그리고 의료진들이 그녀를 살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투병생활과 교도소 복역까지 마치고 생을 이어갔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에도 병원에 신세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집 전세금을 빼 치료비를 변상하려 한 적이 있었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모으려 했지만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 사이 재혼한 남편마저 세상을 뜨고, 자신은 계속해서 영세민 처지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큰 교통사고까지 당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이번에는 제법 넉넉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치료비를 얼추 해결한 후에도 약간의 돈이 남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 속 100만원의 정체는 바로 자신의 목숨 값이었다.

“사는 게 너무너무 팍팍했어요. 죽지 못해 겨우 사는 인생이었죠. 하지만 평생 제 가슴을 짓눌러온 빚을 세상 떠나기 전에 다만 얼마라도 갚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없이 사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렇게 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 같네요.”

차마 봉투를 받아들지 못하는 권창영 원장에게 윤씨는 구구절절 사연을 들려주며 기어이 그 돈을 쥐어주었다.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예수병원은 윤씨가 내놓은 돈을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후원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녀를 병원으로 다시 모셔와 무료로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치료를 통해 건강을 보살펴 줄 예정이다. 목숨을 살리고 마음을 나눈 소중한 만남은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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