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르네상스 시대에 볼로냐는 학문의 중심지 베니스는 무역의 중심지, 피렌체는 예술의 중심지였다. 피렌체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예술은 세 예술가들에 의해 절정에 오른다. 이 세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와 라파엘(1483~1520)이다. 1494년 다빈치는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 그라지에 수도원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다. 당시 다빈치의 고민은 ‘가롯 유다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였다. 그때 다빈치에게 <최후의 만찬> 완성을 재촉하며 스트레스를 준 수도원 부원장 조르지오 바사리(1574)의 얼굴을 가롯 유다의 얼굴로 삼는다.

미켈란젤로는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미술세계를 연다. 이는 양식적(Manered)인 의미를 지닌 사조였다. 즉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정형화된 것도 아닌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그의 대표작 <최후의 심판>을 1537년부터 4년간 교황의 개인 교회당인 바티칸 시스턴 채플의 전면 벽에다 모든 인간들을 나체로 그린다.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나체로 그린 것은 교황이든 인간이든, 누구든지 전능자의 심판대 앞에서는 벌거벗은 모습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당시 최후의 심판에다 나체화를 그려 교황을 모독했다며 교황 의전관 체세나(Cesena)가 역정을 내자 미켈란젤로는 벽화 우측 모서리에다 체세나의 얼굴을 지옥의 사자 미노스로 그려 넣는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예술 그 자체를 모독한 자들을 가롯 유다로, 지옥의 사자 미노스로 그려지는 치욕을 당하게 한다.

라파엘은 르네상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은 침묵과 웅변이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가 함께 만나는 사실감과 신비감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라파엘이 1510년 교황궁에 그린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은 해박한 그의 예술세계를 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37세의 천재 라파엘은 <예수의 변모>를 그리다가 쓰러진다. 그는 자신의 삶이 다 되었음을 감지하고 그동안 살아오며 방종했던 죄들에 대하여 참회한다. 그리고 참회 다음날인 4월 6일 자신의 생일날 영면했다. 그해가 1520년이었다. 이들 세 대가들은 작품 그 자체가 신앙의 표현이었다. 성경이야기는 이들 세 거장들의 주요 주제였다. 또한 그들의 강력한 후원자도 당시의 교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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