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이기적일 수는 없다. 문제는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집단화다. 지금 한국교회는 지나친 분파주의로 이기적 단체로 낙인찍힌 지 오래이다. 물론 교회의 서로 다른 분파는 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 로마교회와 결별하고 참된 신약교회를 세우려는 선배들이 교리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어쩔 수 없는 산물이었다. 그러나 몸의 단일성이라는 에베소서 4장 3절의 관점에서 볼 때 한 몸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다양한 분파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지나친 도그마로 치달았고 이것이 교파주의로 발전된 과정이다.

기독교적 자유의 땅이었던 아메리카에서 틀지어진 교파주의가 지난 132년 전부터 여과 없이 들어온 후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교파주의에 물들게 되었던 것이다.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회를 세우는 극단적 모습은 차치하고라도 노회가 다르다는 이유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교단끼리 얼굴을 맞댄 모습은 세속 사회의 상도만도 못한 추잡한 모습이다. 가톨릭이나 불교보다 기독교가 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것에 대하여 비판을 받는 것은 교파주의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상업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서로 나뉜 한기총이나 한교연 등도 집단적 이기심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이들이 모인 연합 역시 말이 좋지 철저한 지분 싸움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사회의 집단적 이기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인간이 개인으로는 양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한 사회나 집단이 되면 매우 이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부도덕도 무차별적으로 감행하는 것이 한 국가나 집단들의 모습임을 설파했다. 지금 우리들은 도덕도, 윤리도 단지 자기교파,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리새적 규정들 앞에서 땅에 밟아버린 우리들의 모습은 종교개혁 정신을 짓밟고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교회로부터 자유로운 신앙을 얻고자 했기에 저들로부터 반항자라는 프로테스탄트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우리들이 또다시 로마교회의 집단적 이기주의 앞에서 우리들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본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사는 세상엔 나도 있고, 너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있고, 그들이 있다. 셀든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계속 묻고 있는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인가’를 생각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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