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주필)

이태리 토스카나 출생의 교황 레오1세는 400년경에 태어났다. 본래 로마제국의 관리였던 레오1세는 회심 후 사제가 된다. 뛰어난 성직자의 자질과 인품을 갖춘 그는 교황으로 추대된다. 450년 당시 로마는 야만족들에 의해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신의 채찍’이라고 불리는 훈족의 족장 아틸라(Attila)가 쳐들어온 것이었다. 발칸을 휩쓴 저들은 북상하여 쾰른, 트리어, 랭스, 파리 등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황제 별장이 있던 이태리 북부 아퀼레이아를 잿더미로 만든 저들은 다음 약탈지를 로마로 정하고 로마를 에워싸고 있었다.

당시 50세의 레오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선다. 예정된 살육을 피하기 위한 로마시민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때 황제마저 도주한 상황에서 교황 레오는 집정관 트리게티우스(Trygetius)와 함께 민키오(Mincio) 강변에 진을 치고 있는 아틸라를 찾아간다. 말을 탄 채로 진영에 이른 레오는 다음과 같이 아틸라에게 말한다. “아틸라 왕이시여! 한때 로마는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모든 왕들이 로마 황제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국의 황제와 원로원 의원들이 오히려 이제 그대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한때는 세계의 군주였던 이들이 그대 아틸라 왕에게 간청하는 것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은 지배자로서 자비를 베풀어 평화를 세워주길 바랍니다.” 이와같은 말을 하고 레오는 민키오 진영을 떠난다.

놀라운 사실은 ‘신의 채찍’(the Scourage of God)으로 불리던 아틸라가 로마 약탈을 철회하고 물러간 것이었다. 아틸라는 왜 물러간 것일까? 동시대의 역사가 프로스페르(Prosper of Aqulataine)는 훈족왕 아틸라는 레오의 뒤에 검을 든 베드로와 바울의 환상을 보고 경외심에 물러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듬해 아틸라는 게르만 여인 일디코와 결혼을 올리던 날 사망한다. 위기의 로마를 구하는 데 일조한 것이 바로 레오였다. 레오는 451년 칼케톤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본성교리를 확립시킨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교황 위상을 크게 신장시켰고, 레오1세는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회를 지도한다고 주장했다. 476년 서로마 멸망 후 로마시민들은 교황을 종교 사회적인 면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지도자로 여기게 되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