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대대교회)

▲ 흙과 돌로 만들어진 대대마을의 골목길 담벼락은 특유의 멋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교회당 골목길은 마을역사 담고 있다

좁고 불편해도 골목의 정겨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지니고 있어

순천만의 중심은 무엇일까? 대부분 갈대밭과 갯벌 그리고 철새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순천만의 중심은 사람이다. 이제 순천만 생태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순천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공학섭 목사(대대교회)

우리 동네이름은 대대마을이다. 대대(大垈)는 ‘큰 터’라는 뜻이다. 예전부터 300여 가구가 한 데 모여 있는 탓에 큰 마을에 속하였다. 큰 마을이어서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야기꺼리도 많다. 대대마을은 1949년 8월 15일 순천시로 편입되었다. 지금은 개간지가 많아 곡창지대나 다름없지만 옛날에는 논밭이 많지 않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하나님 믿는 복을 다른 마을들보다 일찍부터 누려왔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복음이 들어왔으니 큰 복을 받은 것이다.

먼저 우리 마을 이야기를 하려면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동네가 크기 때문에 골목도 많다. 골목 이름도 가지가지다. 서편 구렁길, 골돔길, 큰골목길, 새돔길, 북문골길, 서당재길, 몬당길 등이 있고 그 밖에 이름 없는 작은 골목들이 수 십 개나 된다. 그리고 골목마다 수 백 년 동안 켜켜이 쌓여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충만하다.

생명의 탄생을 알리던 금줄, 아이들이 떠들며 놀던 곳, 청춘 남녀들이 얼굴 붉히며 연애하던 곳, 새색시 가마 타고 통과하던 곳, 인생의 마지막 장례행렬이 있던 곳도 바로 이 골목이 아니던가. 이처럼 골목길은 인생의 생사고락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야기 공장이나 다름없다.

▲ 골목길의 정겨운 이름 속에는 대대마을 사람들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담겨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길도 골목이다. 크고 넓은 길에서만 살다온 분들은 한 마디씩 한다. ‘교회 들어오는 골목이 좁고 답답하니 길 좀 넓히라’고 말이다. 마치 길만 넓히면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처럼 부아가 나는 소릴 하는 분들도 있다.

다 몰라서 하는 말이다. 골목은 함부로 허는 게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골목엔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골목이 사라지면 역사도, 이야기도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 ‘골목투어’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조금 눈이 트인 사람들은 골목의 가치를 안다. 골목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성공한 곳이 한 둘 아니다. 물론 골목을 상품화 하는 것도 반칙이다. 골목이란 본래 사람 냄새를 맡는 곳이지, 돈벌이의 도구가 아니기에 말이다. 골목이 좁다고 불평해서도 안 된다. 골목이란 본래 좁기 때문에 불리는 말이 아닌가?

필자는 골목 마니아까지는 아니어도 골목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구도심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을 종종 누린다. 좁은 골목일수록 옛스러움이 넘쳐나고,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심지어 골목길을 걷다가 개 짖는 소리만 들어도 어찌나 정겨운지 모른다.

선거 때가 되면 교회로 찾아오는 후보자들이 요청하지도 않은 공약을 발표하곤 한다. 교회로 들어오는 골목을 소방도로로 뚫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화재가 날 때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넓히자는데 동의하지만, 단지 편의를 위해서 골목을 헐고 큰 길을 만드는 일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길이 넓어지면 땅값이 오르고, 큰 차량들까지 자유롭게 들락거려서 편리하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마을에는 큰 길만 필요한 게 아니다. 큰 길 하나를 얻겠다고 모든 역사를 갈아엎고 지워버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너무 편리함에만 초점을 맞추어 사는 것은 그리 인간답지 못하다.

▲ 골목은 좁아서 골목이다. 넓다고 편리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선거를 치를 때마다 도로를 넓힌다는 단골메뉴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경기부양을 건설로 풀어가는 것이 우리나라 역대 정부가 펼쳐온 국가운영방식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마을길이 넓혀질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 마을의 예쁜 골목길도 남은 운명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풍문에 의하면 우리 교회 골목도 확장공사를 위해 이미 거액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골목이 사라지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골목이 품고 있는 문화와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골목이 허물어지면 사람 사는 훈훈한 이야기는 종적을 감추고, 대신 쌩쌩거리며 달리는 자동차 소음만 들려오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골목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골목을 보존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이 옳은 것이 아니다. 좁고 불편해도 골목에서 풍겨나는 정겨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당으로 오는 골목길에는 흙과 돌로 만들어진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닌 담벼락이 있다. 허술하게 보이는 작은 골목길이지만 덕수궁 돌담길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특유의 멋이 있다. 일부러 허물지 않는다면 100년도 거뜬히 버틸 것처럼 든든하다. 게다가 담쟁이넝쿨이 촘촘하게 담을 에워싸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거름을 준적도 없고 물을 뿌려준 일도 없거늘 메마른 담벼락에 붙어 잘도 자란다. 그래서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서 더 펼칠 수는 없다. 아직 못다 한 우리 마을이야기와 우리 교회 이야기는 대대교회 카페를 통해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순천만 생태이야기를 애독해 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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