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의 병리적 현상 가운데 제 일번인 이기주의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경의 실례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이다. 온갖 은총과 축복을 받았는데도 열매 없는 영적 이스라엘의 모습을 이 말씀에서 보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곡해한 신앙의 유산 때문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은 프리즘(prism)의 축복이었다. ‘너로 인하여(through)’ 만민에게 펼쳐질 나눔의 축복이었다. 너를 위하여(for) 이것이 축복의 사유화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고 그 결과가 교회로 하여금 나눔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되게 했다. 결국 공교회가 축복의 프리즘을 망각하면 부패의 늪에 빠지게 되고 곧이어 지존자 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태풍처럼 임했던 것이 성경의 역사이다.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사유화하며 살았던 이기심에 눈먼 누룩들과 피나는 싸움을 하신 것이 복음서의 증언 아닌가? 바리세인의 누룩, 사두개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은 나눔의 은총인 프리즘의 축복을 망각한 선민 이스라엘의 집단적 이기주의의 산물이었다. 바로 이러한 누룩은 313년 신교자유칙령이후 다시 발아되고 성장되면서 신약교회를 퇴색시켰던 것이다. 부패와 타락 하나님의 심판 회개와 용서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라면 지금 한국교회라는 생태계 안에서 독버섯처럼 퍼져가는 누룩의 이기주의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개혁이 무엇인가? 개혁은 끊임없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보다 더 진실하고 심화된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 총회의 누룩이 무엇인가? 회기가 바뀌면 소위 정치권에서 배회하는 수많은 총대들 중 다수의 관심은 돈 되는 부서, 돈 되는 위원회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섬김의 모습은 간곳없고 양지 바른 곳, 잇속 있는 곳, 통상관례로 돈뭉치를 받는 곳만 기웃거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권적이고, 귀족적이고, 물량적인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총회와 부패한 교회 앞에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바리세인의 누룩이라는 말 속에 함축된 교권주의 파벌주의 돈 되는 곳만 찾는 황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집단화가 문제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나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통렬한 자기반성만이 진정한 500주년 기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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