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식 목사(광현교회)

부르심에는 거룩한 뜻이 있습니다

반드시 가야 할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 바라보며 참 제자되어야
 

▲ 강재식 목사(광현교회)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수년 전 치료차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 선교사가 운영하던 ‘하늘에 속한 쉼터’에 머물렀는데, 그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중국 가정교회(처소교회) 지도자들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하늘에 속한 사람들(Heavenly Man)>이란 책의 실제 인물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3일간 숙식을 같이 하면서, 목숨을 건 믿음 이야기와 복음전파 등 실제 간증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고, 많이 감동했고,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은 진짜 ‘하늘에 속한 사람’이며, 또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히 11:37)”이라고 말해 주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도 위대한 신앙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의 간증장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인 이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살았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로 인정받아 그 이름과 행적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들도 특별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듯이(약 5:13), 고넬료 앞에서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베드로처럼(행 10:26) 본문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 살았지만 이 땅을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로서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과학의 첨단기계인 슈퍼컴퓨터의 계수에 의하면 지구상에 왔다 간 출생 사망의 수가 약 940억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출처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영원한 귀착지는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을 사는 우리들에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주는 큰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본향이 있는 인생

우리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가야 할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이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지상천국을 주장하는 여호와의증인이나 몰몬교 등 이단들은 기본적으로 성경 위반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들의 영원한 소망의 나라입니다(계 21:1). 그곳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곳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녀온 천국에 대하여 책도 쓰고, 간증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혹시 환상 가운데 천국을 볼 수는 있었어도, 아직 완성된 천국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갔다가 온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신앙체험이기에 판단을 할 수 없으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눈으로 보았기에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한 믿음의 선조들처럼, 다만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고 소망하고 환영해야 합니다(히 11:13). 주님은 의심 많던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 20:29)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시신을 위해 무덤을 제공했던 아리마데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눅 23:51)로, 그는 공회원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기에(롬 8:18), 언제나 땅 위의 명예나 권세나 물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나그네 인생

나그네 인생은 기독교의 인생관이기도 합니다(13절). 본향을 찾아가는 인생이라는 자체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사는 순례자임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애굽왕 바로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았던 다윗도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 29:15)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이 세상은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욥은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욥 14:1)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③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며 속히 간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행복한 나그네로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어떤 말씀이든지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라고 응답할 뿐입니다.

하늘에 속한 인생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13절). 하늘나라는 장소의 개념보다 통치의 개념이 더 강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완벽하게 실시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곳은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곳이고(계 21장),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곳이고(고전 13:11~13), 눈물이 없고 사망이 없고 아픈 것 애통 하는 것 곡하는 것이 없는 기쁨의 나라 영원한 행복의 나라입니다(계 21:4).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의 믿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10).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3~26).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마 28:18~20). 이 거룩한 사명을 받은 우리들은 영적으로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질 때, 살만하고 평안하다 느껴질 때, 세상의 부와 명성이 유혹으로 다가올 때 즉시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요일 2:15~16).

저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낡은 성경책이 한권 있습니다. 군대생활 3년 동안 보고 가져 나온 것입니다. 3년간 수십 번 본 그 성경책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수많은 눈물자국과 작게 적혀진 셀 수 없는 ‘아멘’이라는 글자입니다. 가끔 이 성경책을 펼 때마다 “몹시 힘들었던 젊은 날의 나의 신앙이 목사가 된 지 30년 된 지금의 신앙보다 좋았구나?”하며 가슴 치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하늘에 속한 사람, 하늘에 속한 목사로 살아가려 다짐하곤 합니다.

우리는 목사로, 장로로,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을 사모하며, 바울처럼 “이 땅의 모든 보화나 명예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나 배설물처럼 여기는”(빌 3:8)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답게 뜨거운 가슴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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