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민 주간은 지난 해 2월부터 넥서스CROSS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탁월한 편집자 경력에도 불구하고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오래도록 성실히 일해 온 사람”이라는 소박한 평가면 만족한다고 말했다./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책을 통해 하나님 더 알아가는 것, 그것이 성장”

한국교회 쇠퇴와 맞물린 기독교 출판계 쇠락 마음 아파
가벼운 검색엔진 시대에 독서 통한 콘텐츠 질 높여가야
영성회복 도왔던 27년 편집 달란트 최선다해 사용할 터

‘짓다’는 ‘만들다’와 다르다. ‘만들다’라는 단어가 건조하고 중립적이라면, ‘짓다’는 수고와 애정을 전제한다. 그래서 밥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농사도, 집도 짓는 것이다.

넥서스CROSS 이한민 주간(53·성도교회 안수집사)은 책을 짓는 사람이다. 1989년 두란노서원에 입사한 후 27년 동안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기독교 신앙 서적을 펴냈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책들만 200여 권에 이른다.

“처음에는 <빛과소금> 기자로 입사를 했어요. 기자로 3년쯤 일하다가 출판팀으로 가게 됐고, 그때부터 책 편집 일을 하게 됐어요.”

<빛과소금> 기자 시절, 그에게는 숨은 스승이 한 명 있었다. <빛과소금> 초대 편집장이었던 고무송 목사다. 그가 입사할 당시 고 목사는 이미 퇴사를 한 상태였지만, 고 목사의 글은 그에게 훌륭한 교본이었다. 인터뷰를 어떻게 전개하는지, 문장을 어떻게 다듬고 풀어가는 지를 익히고, 따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흉내 내며 글을 써가면서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고된 글쓰기 연습은 이후 출판 편집 일에도 플러스 요인이 됐다. 조각난 글을 짜 맞추고, 앞뒤에 맞게 글을 구성하고, 인터뷰를 원고 글로 풀어내고, 그렇게 작가적 역량을 발휘했다. 거기에 그는 틈틈이 편집디자인을 독학했다. 덕분에 잡지기자 경력에 편집디자인 능력까지, 그는 한 마디로 전천후 출판 편집자로 준비돼 왔다.

문화사역자로 살다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두란노서원에서 7년쯤 일했을 때 회사 리더십 교체로 자의반 타의반 사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한 일반회사 기획실에 몸담게 됐다. 기획실에 근무하며 1인 출판 개념으로 책을 펴냈는데, 첫 작품이 그 유명한 <하프타임>(밥 버포드 저)이었다. 자신이 처음 책임편집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다.

“하루는 압구정동 갤러리에서 유명한 표지 디자인 전시회가 열렸어요. 전시회에서 주머니를 털어서 디자인 도록을 샀는데, 그러고 나니 버스비가 없는 거예요. 꼼짝없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했죠. 굉장히 더운 여름이었는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걸어가면서 ‘내 안에 출판에 대한 열정이 있구나. 지금 있는 곳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힘들더라도 기독교 출판계로 돌아가야겠구나’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기독교 출판계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기독교 출판 편집자로서 살겠다는 결단이 단회적이었다면, 기독교 출판 편집자가 ‘사역자’냐 ‘비즈니스맨’이냐는 질문은 오랜 숙제이자 고민이었다. 기독교 출판은 문화선교의 일환이긴 하지만, 마땅히 수익도 내야 했다. 고민과 경험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균형감각’이다.

“처음 기독교 출판 일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 선교사역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요. 그러나 문서선교가 중요하다면 동시에 자신이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판매를 해서 출판공동체인 회사에 유익을 끼치고 장기적으로 그 일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죠. 사역과 비즈니스에 대한 균형감각과 가치철학이 중요해요.”

같은 맥락으로 그는 출판사를 두고 ‘저기는 선교하는 데야’ ‘저기는 비즈니스하는 데야’라고 구분 짓는 것은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라고 말했다. 어떤 형식의 책을, 어떤 가치 전달을 목적으로 내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사역과 비즈니스를 함께 하고 있는 출판사라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사역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에요. 책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그 책이 말하는 주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죠. 그게 중요해요. 돈을 버는 것은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수단이죠.”

▲ 이한민 주간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다

그의 손을 거쳐 많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만들어졌지만, 그중 단연 대표적인 책은 <내려놓음>(이용규 저)이다. 판매부수로 5000∼1만부 가량을 베스트셀러라 보는 기독교 출판계에서, <내려놓음>은 70만부 이상이 팔렸다. 기독교 출판 시장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많이 팔릴 줄은 몰랐어요. 저자가 많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었고, 또 그 전까지 선교사들이 쓴 책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를 않았거든요. 거기다 그 당시 자기계발류나 긍정공식 같은 책들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내려놓음>은 정반대 개념으로 접근을 했었거든요.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많이 사봤을 거예요.”

<내려놓음>이 예상을 뛰어 넘어 스테디셀러가 된 책이라면, 잔뜩 기대를 하고 펴낸 책들이 저조한 경우도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그는 기독교 출판에서는 일반 시장과 달리 ‘하나님의 섭리’라 불릴만한 영적인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책들을 만들게 하시고 호응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보면 그 책은 이러이러한 책이었다고 비판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게 한국교회에 필요했던 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적인 원리와 함께 그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 출판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얻게 됐다. 우선 그는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주제의 독창성을 강조했다.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들으면 ‘왜 우리가 이걸 몰랐지’ 하고 무릎을 탁 칠만큼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혹 누가 이전에 이야기를 했더라도 벼린 칼처럼 날카롭고 강력한 이야기라면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이론적이거나 당위적인 이야기이거나 혹은 남의 이야기를 가위로 잘라 붙인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이 찢겨 가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대로 살았던 이야기, 설교집이라면 목회자 자신이 그렇게 살았거나 교인들이 설교대로 살았던 생생한 간증들이 담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실행한 일들이 책의 주제나 이야기의 근거가 될 때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팁으로 그는 “누가 그 이야기를 했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자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바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가 쓴 책이냐에 따라 독자들의 반응이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책으로 성장하라

한국교회 쇠퇴와 맞물려 그는 기독교 출판계의 쇠락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 출판 일을 시작한 이들 중에 현직에 남아 편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출판사들이 줄어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책을 본다는 것은 교회에서 지적 훈련과 성숙이 강조된다는 말인데, 한국교회가 질적·양적으로 저하되는 과정에서 기독교 출판시장도 같이 쇠퇴하는 것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는 출판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독자들도 선교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기독교 출판에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예로 불교의 경우 혜민이나 법륜의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팔리는 이유 중 하나가 불교도들이 시주하고 포교하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커피 두어 잔 사주는 값이면 책을 선물할 수 있잖아요. 전문적인 신학책이 아니라면 자기도 읽고, 그리고 부담 없이 전도용으로 사서 선물하면 좋겠어요.”

덧붙여 그는 인터넷 시대일수록 의지적으로 책을 사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색엔진에 매몰돼 지식과 영성이 가벼워지는 시대에 책을 통해 논리를 갖추고 콘텐츠의 질을 높인 사람은 영향력과 리더십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권이든, 두 달에 한 권이든, 하다못해 일 년에 한두 권이든 신앙서적을 읽는 사람과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은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책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 그게 성장 아니겠어요?”

그는 건강과 여건이 주어지는 한 기독교 출판계를 지킬 생각이다. 그는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기독교 출판계에 오래 몸담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 것 없다”며, 그렇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이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밥을 짓지 않는다. 그 역시 그랬다. 자신이 편집한 책이 누군가를 살찌울 때 그것으로 함께 배불렀다. 덕분에 그는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행복은 이어질 터였다.
 

인터뷰 요청과 함께 이한민 주간에게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 주간은 좋은 책들이 많아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며, 고민 끝에 책 한 권을 소개했다. 지금 몸담고 있는 출판사가 2015년에 펴낸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이동희 저)이라는 책이다.

<꺼지지 않는 불…>은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를 비롯해 화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개혁의 횃불을 치켜들 백조의 등장을 예언한 존 위클리프, 루터의 뒤에 가려졌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루터의 개혁을 도운 필립 멜랑히톤, 냉혹한 열정으로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견지한 존 칼빈, 갤리선의 노예에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주역이 된 존 녹스, 메이플라워호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시작한 윌리엄 브래드포드, 냄비 땜장이에서 영국 최고의 작가가 된 존 버니언,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설파한 존 로크 등 종교개혁가 20명의 투쟁과 희생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한민 주간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유럽의 종교와 정치가 새롭게 변화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며 생생한 종교개혁가들의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깨달음과 결단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책을 추천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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