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선출된 자는 혐의가 없어야 한다

▲ 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하나님은 영원 전에 선택한 자가 지상에 경건하게 살아갈 때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아신다. 하나님은 경건의 신앙을 강화시키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세우신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신자들은 교회에서 격려하고 의지하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간다(벧후 3:18 참고).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신자가 되기 위해서, 신자이기에, 신자로서 살기 위해 등등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찾아온다. 이 일을 위해 지도자인 직분자들이 필요하다. 중생된 자들만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교회정치’가 요구된다. 세상 정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사람을 다룬다는 면에서 유사한 점도 없지 않다.
역사에 존재했던 교회정치는 회중정치, 감독정치, 장로정치로 구분된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를 누가 선출하며 교회 업무를 누가 결정하고 집행하느냐에 따라 구분된 것이다. 회중정치란 지도자들 중심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상식적으로도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늘 불가능했음을 볼 수 있다. 감독정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를 누가 선출하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고위 성직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만 아니라 행정 업무를 주도하고 독재한다.

장로정치는 다르다. 지도자계층인 장로회를 두어서 그들이 교회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도록 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그 지도자들을 일반 신자들이 선출한다. 어떻게 보면, 회중정치와 감독정치를 조합시킨 민주정치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는 교회정치이다. 모세의 경우만 아니라 사도행전 15장의 경우를 볼 때 장로정치는 가장 성경적이다.

교회정치는 참된 교회가 보존되고, 참된 교리가 전해지고, 악한 자들이 영적으로 수정받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도움과 위로를 받는데 있다. 또 질서가 있어야 한다(<벨지카 신앙고백서> 30항).

하나님은 교회에 하늘 열쇠를 맡기셨다. “이 열쇠로 인해 그들은 죄들을 보류하고 사면하는 능력을 가지고,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과 견책으로 그 나라의 문을 닫기도 하고, 회개하는 죄인들에게는 복음의 사역으로 때를 따라 견책들에서 면제하므로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권한을 갖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0장 2항). 이 권한으로 교회는 연약한 성도를 격려하고 수정하고 기강을 세운다(마 18:15~18; 요 20:23 참고). 이 권한은 복음 선포의 사역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거짓된 교회가 이것을 악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영적 사법권에서만 제한되는 것이지 세속권까지 침범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매우 유의해야 한다.

장로정치에는 참된 교회의 표지에서처럼 복음을 순전하게 선포하고 성례를 집례하는 사역자 또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이다(고전 12:28). 장로교를 이끄는 지도자는 장로와 집사인데(행 14:23; 딤전 3:8~10), 장로에는 가르치는 자와 치리를 함께 하는 목회자와 신자들을 치리하는 책임을 맡은 장로로 구성된다. 장로의 할 일은 신자들을 지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다. 집사는 재정을 책임지고 교회의 전반 업무를 실행하는 자이다. 장로에 속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복음 선포와 성례의 집행이고, 가르칠 때 설교만 아니라 개인 훈계까지도 포함된다(<기독교강요> 4권 3장 6항). 말씀 선포자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으라는 명령을 받은 자로서 그 어떤 것도 고안하지 말아야 한다. 이 의미는 자신이 전달하는 말씀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령 받은 이상의 것을 가르쳐선 안 된다”(<기독교강요> 4권 8장 3항).

집사의 경우는 신자들의 매일 헌금과 교회의 매년 수입을 적절하게 사용하는데 헌신한다(<기독교강요> 4권 4장 5항). 그리고 “모든 자는 말씀의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대할 때 특별한 평가로 대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사역 때문이다. 수군거리거나 언쟁하거나 싸우지 말고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벨지카 신앙고백서> 31항).

직분 수임의 의식은 임의로 누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 회의에서 일반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

이들을 선출함에 있어 권력이 작용해선 결코 안 된다. 선출된 자는 혐의가 없어야 한다. 순전한 교리와 거룩한 삶을 살고,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사역에 불명예를 끼치지 않는 자를 선출해야 한다. 또 맡겨진 사역을 합당하고 알맞게 수행하고, 필요한 기술을 가진 자라야 한다. 이런 자를 선출하기 위해 교회는 결국 지혜와 불별의 영을 하나님께 간구한다(<기독교강요> 4권 3장 12항). 수임 의식은 안수로 이뤄졌다. 일반인들이 목회자들에게 안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만 선출된 자에게 안수했다(<기독교강요> 4권 3장 1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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