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현지 선교에 정착해야”

여전히 새 도전 선택, 태국 선교 동기부여에 힘쓸 것

정승회 선교사(GMS·동광교회 파송)를 빼놓고 태국 선교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 선교사는 태국 선교뿐 아니라 우리 교단 선교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넉넉히 차지한다. 그는 아내 김영숙 선교사와 함께 1978년 제63회 총회에서 태국선교사로 인준을 받아, 다음해 12월 태국 땅을 밟았다. 예장통합과 교단 분열 후 우리 교단 첫 번째 선교사였다.

▲ 태국 정승회 선교사는 은퇴 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태국에서 일군 성과는 눈부셨다. 1980년 태국 정부의 종교정책 정비에 맞춰 주태국 한국장로교선교부를 설립했다. 선교부는 선교사 비자 20개를 보유해 한국교회의 태국 선교에 굳건한 디딤돌이 되었다. 1982년부터 교회 개척 사역도 활발히 전개해, 1992년에는 태국장로교총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신학교 사역도 빼놓을 수 없다. 1985년 방콕목회대학원을 설립하고, 1987년에는 산족교회사역자훈련원을 설립해 목회자 재교육을 실시했다. 2004년에는 태국 최북단 치앙라이에 태국장로교신학교를 설립해 본격적인 목회자(M.Div) 양성에 들어갔다. 이에 더해 2007년부터는 미국 위클리프대학교와 협력해 태국에 목회학박사 과정을 개설했다.

그렇게 37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올해 12월 선교사 은퇴 정년을 맞는다. 그러나 그는 아직 쉴 생각이 없다.

“GMS 선교사로는 은퇴하지만 앞으로 태국과 한국, 미국에서 태국인 선교를 계속할 거예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10년 동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마지막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실제 한국에서도 태국인 선교에 힘쓰고 있다. 태국에서 알게 된 한 목회자를 도와 부평에서 매 주일 태국인들을 대상으로 예배 설교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싸왓디선교회’라는 비영리 종교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태국인들을 선교하고, 태국 비전트립 등을 진행해 태국 선교에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퇴를 앞둔 시니어선교사로서 그는 GMS를 향해 애정 어린 조언도 남겼다. 첫 번째는 선교사들이 현지에 철저히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것처럼 선교사라면 현지에 인카네이션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태국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태국화가 안된 선교사들이 많아요. 나는 한국은 잘 몰라도 태국은 잘 알아요. 태국 국왕이 죽고 난 후에 태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요. 선교사라면 철저히 그 나라 사람이 돼야 해요.”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교훈련생 때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고, 이 훈련은 선교 현지에서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지 선교에 적응하고 선교사간 협력을 위해서는 한국보다는 현지에서 더 중점적으로 선교훈련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GMS 행정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도 지부도 있지만 지금은 거의 선교사회 정도 성격밖에 안 된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본부에서 전격적으로 권한과 재정을 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부가 꼭 감당해야 할 일만 감당하고, 전략적으로 지역과 지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부장을 돌아가면서 맡는 것도 고려해봐야 해요. 현지와 협력을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런 은사가 없는 사람이 지부장이 되면 어려움이 생겨요. 리더십 있는 시니어 선교사들에게 충분히 권한을 주는 것이 필요해요.”

그는 은퇴 후에도 태국인 선교를 계속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위클리프대학교에서 5년 내에 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세웠다.

그가 태국 땅을 밟은 후에 수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교회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은퇴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는 그렇게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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