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사랑으로 커가는 아이들”

제주 가족캠프서 고민 나누며 힘 얻어 … “한국교회 동행 늘어나길 …”

조용한 남쪽 제주도에 엔젤만 아이들이 떴다. 한국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 소속 11가정이 4월 24~26일, 2박 3일간 가족캠프를 떠난 것이다. 그동안 아이와 집 앞을 나서는 것도 어려워하던 가족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용기를 냈다. 같은 아픔을 가진 가족들이 서로 힘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공항에서부터 만만치 않았다. 10명의 엔젤만 아이들과 그 형제들이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는 과정은 평균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아이가 한 명인 가족은 그나마 다행. 최연소 참가자인 동생 준원이와 함께 온 엔젤만 지윤이네 가족은 엄마아빠가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다른 손은 아이를 챙기느라 가장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좌석에 앉았다.

제주도에 도착해 처음 식사를 할 때도 부모들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요즘 사춘기가 찾아와서인지 이유 없이 울기 시작한 유진이부터 어느 반찬을 집어 달라는지 알 수가 없어 입에 넣어주는 족족 수저를 쳐내는 정민이까지 정신없는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관광도 쉬울 리 만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달려들어 안기는 서진이를 꼭 붙잡느라 엄마아빠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왜일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안도의 미소가 보였다.

▲ 엔젤만 가족들에게 한국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은 힘겨운 일상을 씩씩하게 이겨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제주도에서 열린 가족캠프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오랜만에 여행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비장애인 가족들이랑 갔으면 눈치 보느라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엔젤만 식구들이랑 같이 가니까 부담이 없어요. 우리 아이가 뭘 해도 다 이해를 해주니까 고맙고 정말 좋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제주여행의 꿈을 이룬 지윤이 엄마에게는 이렇게 마음 편한 캠프가 또 있을 수 없다. 서윤이 아빠도 마찬가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감대가 있죠.”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보기 힘들었던 엔젤만 환우의 형제들도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며 노느라 신이 났다.

리조트로 돌아온 저녁시간,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 일정을 함께 하느라 진이 빠질 만도 한데 가족들은 한데 모여 밤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서로의 근황을 묻고, 아이의 양치질 문제에서부터 비만에 대한 고민까지 각자의 경험을 나누느라 수다는 끝이 없다.

이날 가장 큰 화두는 엔젤만의 장애진단을 지적장애가 아닌 뇌병변으로 받는 문제. “아산병원에서 이 부분을 가지고 교수님이 우리 아이들 임상실험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많이 참여해야 할 것 같아요.” “가족모임 대표 명의로 해서 보건복지부나 유관단체에 공문을 보내는 시도를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교수님에게도 협력을 부탁해 봅시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아픔을 털어내려는 듯 가족들의 나눔은 밤이 늦도록 그칠 줄 몰랐다.

2004년 처음 만들어진 한국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은 서로에게 따뜻한 안식처이자 의사이고, 친구이면서 위로자다. 매년 2회 정기모임과 1회 캠프로 친목도 다진다. 제주도 유일의 엔젤만 환우인 하윤이 엄마는 가족모임이 없었으면 하윤이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제주도에서 병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의사도 선생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히려 저에게 물어봐요. ‘책에서만 보던 엔젤만을 여기서 다 보네’라고 하죠.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프다든지 아이를 키우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가족모임 채팅방에 올려서 도움도 받고 격려도 받으니까,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서윤이 엄마 도움으로 장애인에게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을 알게 돼서 한 달 동안 잘 타고 다녔다니까요.”

몇 년 전부터는 가족모임에 새로운 친구도 생겼다. 한국교회봉사단(대표회장:김삼환 목사)은 2013년부터 엔젤만 환우들에게 매년 종합 비타민을 제공하고, 어린이날 선물 전달, 캠프 지원 등 물심양면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왔다. 이번 제주도 가족캠프도 한국교회봉사단에서 준비했다. 희귀난치병인 루게릭병이 널리 알려져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졌듯이, 엔젤만 증후군 환우들과도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맞춰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소망이다.

한국교회봉사단 전혜선 목사는 “더 많이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엔젤만 환우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국교회봉사단은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후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다. 1만원이면 일주일동안 1명의 환우에게 기저귀를 전달할 수 있고, 3만원이면 한 달 동안 영양제를 지원할 수 있다.

짧은 가족캠프의 마지막 날, 가족들은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며 다음에 볼 때까지 또 씩씩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이렇게 엔젤만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모임 모두의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가족들이 애쓰고 나서는 것도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더 큰 애정을 받아 차별 없고 소외 없는 세상에서 밝게 살아가는 데에는 한국교회의 역할 또한 크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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