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목사(예수커뮤니티교회)

▲ 박경일 목사(예수커뮤니티교회)
요즈음 대한민국은 20대 총선 공천으로 인해 매우 시끄럽다. 내 편을 세우고 상대편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과감히 행해지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한 편이 되고 있다. 마치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터 같다.

우리 주위에는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함께 하면 편하고, 즐겁고 유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불편하고, 성가시거나 해로운 사람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곁에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잠시도 마주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만 우리 주위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깨닫는 것은 함께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옆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은 말년에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사람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백성들도 점점 사울에 대해 실망하고 멀어져 갔다. 심지어 아들 요나단과 딸들까지도 등을 돌렸다. 왜 사울은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사울 안에 있던 해결되지 않은 적개심과 불신 그리고 시기심 때문이었다. 특히 다윗에 대한 사울의 불신과 적개심은 대단했다. 다윗을 핍박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애를 파괴했다. 사울은 어떠한 사람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배신자로 여겨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적개심을 가지고 산다. 오늘은 이 사람이 싫고 내일은 저 사람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자신 속에 있는 적개심은 보지 못한다. 자신 속에 있는 불신과 시기심을 보지 못한다. 나뿐 아니라 상대방도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

적개심은 적개심을 경험할 때 형성되기 쉽다. 사울의 적개심을 경험한 다윗은 억울함과 비통함, 그리고 복수심으로 적개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을 높이고 낮추는 일, 부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는 일이 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겸손히 인내했다. 적대감을 경험했지만 마음 속에 적대감을 쌓지 않고 오히려 더욱 너그럽고 자비로운 큰 그릇이 되어 갔다. 요셉 역시 많은 적대감을 경험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셨을 때 복수하거나 사람을 헤치는 데 쓰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기에 그는 온 인류를 살리는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적개심을 경험하고 사는 우리는 쉽게 적개심의 포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기심과 적대감을 준 사람들에게 앙가픔을 하려는 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도 함께 하기 싫은 사람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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