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종교개혁은 순전한 말씀선포서 이뤄진다
선포한 말씀대로 담대하게 살아가야 하는 양심적 결단 필요
 

진리의 재발견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분위기를 주위에서 읽을 수 있다. 또 다음달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달이다.

개혁(reform)은 새로운 판을 짜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고, 혁명(revolution)은 새로운 것을 위해 옛 것을 뒤엎는 것이다. 또 종교개혁은 기원으로(ad fontes) 돌아가자는 단순한 운동도 아니다. 종교개혁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살피기 전에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살펴야 한다. 그런 후 오늘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른 것이다.

종교개혁은 ‘진리의 재발견’이다. 무슨 진리를 ‘재발견’했다는 것일까? 신약성경 이후 묻힌 진리가 있었다는 것인데,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묻힌 진리를 찾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과는 다른 재발견이다. 그 진리는 무엇일까? 이 진리는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초대교회 교부들도 간과했고, 희미하게 언급했던 진리가 있었다. 그것은 믿음에 관한 진리, 즉 ‘칭의’였다.

종교개혁자들만큼 ‘이신칭의’의 진리를 밝힌 자들이 일찍이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교리는 구원의 진리에 본질적이다. 루터주의는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고백서(Confessio Augustana)’에서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개혁주의는 이러한 ‘3솔라’를 인정하지만, 이것보다 ‘어두움 후에 빛(post tenebras lux)’이라는 슬로건을 선호했다. 종교개혁은 ‘진리의 재발견’이었고, 그 진리는 이신칭의였다. 이런 재발견은 언제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데서 일어났다.

 
성경의 깨달음

성경은 일어난 개혁운동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16대 유다 왕 요시야(기원전 640~608년) 때였다. 요시야의 치리 18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성전을 수선하기 위해 매년 거두어들인 세금을 사용하라고 명했다. 그러는 도중 그는 율법책을 발견했다(왕하 22:8). 이 소식을 접한 왕은 옷을 찢었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왕하 22:13). 이 율법책은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 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24~26)는 것과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다. 묻힌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고 요시야는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이런 깨달음을 늘 기억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 왕들은 그렇지 못했다. 성경에 대한 요시야 왕의 반응은 후에 그의 아들 여호야김 왕과 대조적이었다. 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는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바룩을 통해 백성의 귀에 낭독하도록 했다(렘 36:6). 바룩은 그의 말대로 낭독했다(36:10). 생명의 위협이 주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고관들은 예레미야와 함께 숨으라고 바룩에게 권하며 왕에게 알리지 말라 했다(36:19). 하지만 이 사실은 왕에게 알려졌고, 여호야김(엘리아김)은 당시 겨울 궁전에 있었는데 두루마리를 화로에 던져 불살라 버렸다(36:23). 더욱이 부친 요시야 왕과는 달리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다(렘 36:24). 하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시금 말씀을 기록케 하였다. 동시에 여호야김에 대해 경고하기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렘 36:30). 이 예언의 말씀대로 그의 아들 여호야긴(여고냐)이 왕이 되었으나 겨우 3개월 동안 치리했을 뿐(대상 3:17~18), 바벨론으로 압송된 후(왕하 24:15) 그곳에서 죽고(52:33~34) 그의 시신은 버려지고 만다. 그의 삼촌이며 여호야김 왕의 동생인 시드기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37:1)이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죽는 자녀들을 본 후 눈알이 뽑히고 만다(렘 39:1~7).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의 후손의 왕위는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몰몬경을 읽어보면, 시드기야의 아들 물렉이 죽음을 피하여 아메리카로 건너가 이스라엘의 또 다른 부류인 니파트(Nephites)를 이룬다는 것이다. 황당하게 가공된 이야기일 뿐이다.
 

에스라의 개혁운동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새롭게 시작된다. 바벨론 70년 포로가 끝나는 시기, 학자며 제사장인 에스라는 바벨론에 있던 유대인들의 한 무리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에 8:2~14). 이때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 I, 기원전 465~424년) 왕 7년이 되는 때(기원전 458년 4월 니산월)였다(에 7:8). 4개월이 걸려 약 1300km나 되는 거리를 통과하여 마침내 예루살렘에 아브달(458년 8월 4일)에 도착했다.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에 7:10).

이에 따라 모든 백성은 한 자리에 모였다(느 8:1; 에 3:1). 그들은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기를 청”했다(느 8:1). 445년 10월(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는 율법 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렀다(느 8:2). 백성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섰다(8:3). 개정판에는 단지 “읽으매”라고 되어 있으나 깨달을 수 있도록 읽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읽었다고 해석되는 것이 좋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아멘, 아멘 하고 응답”했고 하나님께 경배했다(느 8:6).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강해하며 선포한 결과 백성들은 모두 깨달았고 울었다(느 8:9). 또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순종했다. 이러한 개혁운동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다(8: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의 종교개혁과 같은 사건이었다.

 
말씀 선포와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순전한 말씀 선포에서 이뤄진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은 그가 처음으로 성경을 접했던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일어났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친구 니꼴라 콥이 소르븐 대학교 취임 연설문 작성에서 엿볼 수 있다. 칼빈은 그 연설문 작성자였다. 칼빈은 연설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악습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죄 용서 및 성령의 무상의 은사인 영원한 생명을 다뤘다. 결국 니꼴라 콥과 칼빈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명수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뿐 아니다. 영국 종교개혁에서 ‘영국 청교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3~1536년)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므로 순교 당하면서 성경 중심의 청교도 정신을 심겼다.
 

담대한 말씀 선포

종교개혁은 단순한 개혁운동(reforming movement)과는 다르다. 신정정치였던 이스라엘 형편과 현재 우리의 형편의 상황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교회 역사에서 수차례 개혁운동이 있었지만 풍파와 물결만 일으키고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달랐다. 개혁운동이 제도와 인물을 바꾸는데 관심을 가지는 혁신적이었다면, 종교개혁은 순전한 말씀 선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리를 재발견한 것에 있기 때문이다.

순전한 말씀 선포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대가란 1차적으로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일 수 있다. 나아가서는 양심적 결단도 요구된다. 자신의 부패성과 관습만 아니라 지성과 이성까지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새롭게 만들거나 발견하겠다는 식으로 막가는 주장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의 타락과 부패의 책임은 1차적으로 사회문화에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청결하거나 청렴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말씀 선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그 목회자의 삶은 고달플 것이다. 선포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외부에서의 조롱과 비난 역시 받아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 시대에 선지자들이나 교회 역사에서 개혁자들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 역시 추방, 재산몰수, 조롱, 생명의 상실까지 감수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순전한 말씀 선포는 불가능하고 종교개혁의 정신마저 따르기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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