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서도 신앙도 흔들림 없이 ‘터치 다운’


한국 국가대표팀 이끌고 미식축구 월드컵 본선 진출 ‘쾌거’
청교도 정신 깃든 스포츠, 주목받지 못해도 기도하며 최선
월드컵 후 중국 대표팀 맡아…평신도 선교 비전 이뤄갈 터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미식축구만 생각하면 내 마음 어디선가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것이 일었다. 남들이 “저거, 미친 놈 아니야?”라고 콧방귀를 뀔 지 몰라도, 고등학교 2학년때 제 발로 감독에게 찾아가 미식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그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여하튼 미식축구만 생각하면 그렇게도 좋았다. 그런 그가 선수도 아닌 감독으로서 결국 미식축구 월드컵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7월 초, 미국 오하이오주 캔튼을 향해 장도에 올랐다.


미식축구 월드컵 본선 진출

백성일 미식축구 국가대표팀 감독(47·은항교회 집사)이 이끄는 한국팀은 7월 9일 호주와 본선 첫 경기를 치른다. 지금도 TV 중계는 커녕 스포츠 한 귀퉁이에서조차 미식축구 대표팀이 본선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뉴스는 보이지 않는다. 미식축구 월드컵 본선에 한국팀이 참가했는데도 선수들, 오로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애시당초 언론의 하이라이트를 받고싶은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참가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미식축구를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철저히 외로운 스포츠다.

“원래 미식축구는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축구와 럭비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경기를 하기 전, 라커룸에서 팀원들이 모여 기도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입니다. 청교도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진행되는 몇 안되는 스포츠입니다.”

백성일 감독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미식축구에 대해 연신 설명했다. 미국식 국민성에 맞는 미국 최초의 스포츠가 미식축구라는 점도 퍽 강조했다. 맞다. 미식축구는 1876년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프린스턴 컬럼비아 하바드 예일대가 중심이 되어 전미국축구연맹을 창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식축구의 대명사인 슈퍼볼의 경우 3500만명 이상이 관전을 하고, TV시청자는 1억 2000만명이 넘는다. 공중파 방송의 중계권료만 따지면 5조원으로 축구 월드컵 중계권보다 훨씬 높다. 광고단가만 16조원이라니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한국에도 미식축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난 6월 27일 구미 금오공대에서 한국 미식축구 국가대표팀이 모여 훈련을 했다. 제5회 미식축구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치른 마지막 연습이었다. 훈련이라고 해야 고작 1박 2일. 전력분석을 하고, 각기 포지션별 미팅을 갖고, 그라운드 훈련을 하면 시간이 훅 지나간다. 연습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지난 달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경북대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훈련을 가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선수와 코칭스텝, 매니저 그리고 미식축구 관계자들은 그래도 신이 났다. 선수들은 각자 생업이 있고, 대학에 다니느라 주중에 모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지만, 한 달 만에 모여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백 감독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미식축구협회가 아직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준가맹단체나 인정단체에도 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식축구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탓에 가맹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방황 끝내게 한 동력

백 감독은 국내에서 미식축구가 인식이 덜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짙은 표정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 미식축구 대표팀은 무늬만 국가대표이지, 훈련 경비에서부터 월드컵 참가비까지 모두 개인이 부담한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몇몇 독지가가 후원을 하기도 했지만, 턱없이 부족하여 크라우드 펀딩을 벌이기도 했다. 감독도 무급, 단장이나 스텝들도 무급, 선수들도 당연히 무급. 동호인들끼리 즐겁게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백 감독은 그나마 수산물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형편이 나은 셈이다.

“저한테 미식축구는 거의 신앙과 같습니다. 젊은 시절 방황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미식축구를 하면서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오사카침례교회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나를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학을 떠날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일본에 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기도를 해주시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백 감독은 지금도 일본에서 시합이 열리면 어김없이 선수들은 데리고 오사카순복음교회에 찾아가 기도부터 하고 온다고 말했다. 지난 해 4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이 걸린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부산 신평로교회 김학준 목사와 아버지 백영우 장로가 기도를 했다. 그 전에 그는 본선 진출을 기원하며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쿠웨이트 선수들도 단장인 왕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출전에 임했다. 결과는 69대 7 한국 승리. 기도를 한다니까 보이지 않게 일부 선수들이 반대를 했지만, 본선진출을 확정 지은 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때 그는 아버님이 흘리는 눈물을 난생 처음 보고, 그동안 부모님 속을 썩이며 반항하던 자신을 한없이 뒤돌아보며 반성했다고 말했다. 증경부총회장 백영우 장로의 3남 중 둘째인 그는 부모님의 신앙이 그를 세워 놓았다고 고백했다.


미식축구로 평신도 선교의 꿈

그는 이번 미식축구 월드컵을 통해 미국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식이나 하는 스포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미식축구협회가 동호인 성격을 넘어서 대한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공신력 있는 기구가 되는 것도 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외국 선수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팀 프로팀들을 거친 매우 잘하는 선수를 선발하여 대표팀을 구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체격조건이 괜찮은 사람을 우선 선수로 선발합니다. 기술은 나중 문제지요. 그러다보니까 경기를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선수에게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사회인과 전문 미식축구 선수와 시합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제대로 경기를 펼치고 오겠습니다.”

그는 선수나 스텝들이 부족할 때면 기가 막히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셨다며, 힘들게 월드컵에 참여하는 만큼 경기도 후회없이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오하이오 캔튼의 한인교회가 기도는 물론 응원부대까지 준비했다는 말에 힘이 난다는 그는 본선에 만족하지 않고 4강까지 도전하겠다고 당찬 포부도 밝혔다.

“제 꿈은 한국 미식축구의 월드컵 4강이 아닙니다. 동의대 신라대 감독을 거쳐 현재 해양대 감독과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지만, 미식축구를 통해 평신도 선교를 펼쳐보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단기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가는 것도 그런 일환입니다.”

글=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사진=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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