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강석근 편집국장

▲ 기독신문의 역할에 대해 대담을 벌인 신동식 목사(오른쪽 첫번째), 신국원 교수(가운데), 강석근 편집국장. 기독신문이 외연을 넓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라는 주문과 당부가 있었다.

교회 공동체 화평과 공의 위한 건강한 대안 제시하라
한국교회 위기상황 산발적 진단과 비판은 변화 동력 못 이끌어내 … 교단 아픔도 진실하게 말하는 소통의 광장돼야
기독신문, 스스로 교단지 역할 한정하지 말고 사회 모든 영역서 역량 발휘해야 … 복음 통해 감동 주는 신문이 되길


기독신문은 창립 50주년 지령 2000호를 맞아 ‘언론으로서 기독신문의 역할과 미래’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대담은 2월 26일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교에서 강석근 편집국장 사회로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와 진행했습니다. 신국원 교수는 기독교세계관 1세대 학자로 총신대학교에서 기독 청년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깨우쳐 주시는 스승입니다. 신동식 목사는 목회현장에서 개혁주의 신학에 따라 성도를 양육하시며 한국교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열혈독자이기도 한 신국원 교수와 신동식 목사는 기독신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격려와 고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편집자 주>


강석근 편집국장(이하 강 국장):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특별히 기독신문 50주년 지령 2000호를 맞아 두 분을 모시고 고언을 듣고자 합니다. 대담에 기꺼이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기독신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네요.

 
▲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국원 교수(이하 신 교수): 사실 기독 언론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사이비 언론도 많이 생겨서 신뢰감도 떨어졌고요.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기독신문을 정독하고 있습니다. 기독 언론 중에서 기독신문을 가장 신뢰하고 있습니다. 내용도 풍부한 것 같고요. 교회와 관련된 내용이 주로 기사에 나오지만, 교양이나 문화 사회이슈 등도 잘 다루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공동체의 통로라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 기독신문은 교단과 한국교회 공동체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신동식 목사(이하 신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소속 목회자로 기독신문은 친근합니다. 예전보다 기획기사 심층기사가 많아져서 몹시 좋습니다. 기획이나 심층 기사는 공동체의 여론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점에서 최근 기독신문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성공한 교회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한 교회보다 건강한 교회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강 국장: 언론은 공동체의 통로라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더욱 심도 있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려운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 기독 언론으로서 낙담할 때도 있습니다. 기독 언론의 존재 이유 또는 사명은 무엇일까요?
 
신 교수:
기독 언론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동체의 샬롬을 구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기독교의 사랑을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언론이 편향되면 샬롬을 깨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편향된 기사로 샬롬을 깬다면, 언론은 그 역할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어느 언론사든 각자 색깔이 있지만, 사회의 공존과 정의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기독신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을 두고,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을, 부패한 곳에 공의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신 목사:
한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목회자를 만났는데, 기독신문에 나온 기사를 그대로 자신의 생각처럼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기독 언론의 역할과 사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신문을 비롯해 기독 언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과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정론이 필요합니다. 바른 성경에 입각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사를 써야 합니다.
 
강 국장: 말씀을 들으니 기독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이 무겁습니다. 기독신문이 그 정도로 목회자와 성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군요.

 
▲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신 목사: 기독신문이 목회자와 성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신문이 나오면, 교단의 일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기사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기독신문이 영향력을 지대하게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시론이 기독신문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론에 교단 외의 사회 이슈에 대해 의미 있는 글이 실립니다. 이런 시론은 모든 독자들에게 생각의 틀을 넓여 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시론에 적절한 필진을 섭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강 국장: 하지만 기독교가 사회에서 ‘개독교’로 폄하되고 각종 불미스러운 일들로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일상화 된 현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기독신문에서 이런 문제도 지적하고 대안도 제시하려 하는데, 사실 답답한 마음이 있습니다.
 
신 목사: 제가 젊은이들과 가까이 있어서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깊이 알게 됐습니다. 저는 모두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비판을 하는데, 너무 산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흡사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종합병원이 아니라 동네 작은 병원에서 단편적으로 진단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 너무 산발적으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지금 한국교회 상황은 종합병원에서 진단과 처방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종합하고, 그 종합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비판도 대안도 산발적이다보니 목회자나 성도들이 오히려 지쳐갑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 기독신문이 바로 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신 교수: 저는 ‘한국교회의 위기론’에 대해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사실 그동안 교회가 좋았던 지난날에 누렸던 것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것에서 있습니다. 지난 30~40년 한국교회가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교회의 문제점이 분명 있었지만, 그 성장 안에 묻혀 있었습니다. 또한 성장과 함께 그 문제들이 증폭되기도 했습니다. 성장이 멈추자 그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위기론이 아니라 ‘대안이 없다’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한다면, 그 치유와 대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대안의 하나로 ‘기독교가 무엇인가, 교회가 어떤 곳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온갖 위기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그 얼마나 많은 국가와 민족과 문화와 철학이 사라졌습니까. 그럼에도 교회는 이어져 오고 있고,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에 집중하고 성도들에게 알려주는 것,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목사: 위기론만 있고 대안이 없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비판은 차고 넘치는데 대안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합니다. 이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기독신문도 이 역할에 더 매진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보다 성공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립니다. 건강한 교회를 보여주지 못하니, 젊은이들이 오히려 교회를 떠납니다. 사실 성공한 교회들 중에 세속적 관점에 따라 운영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세속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성공한 교회를 떠나 건강한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 강석근 편집국장(기독신문)
강 국장: ‘대안 없는 비판’에 대한 두 분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기독신문이 교회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으로서 필요한 점이 무엇입니까.
 
신 교수:
무엇보다 기독 언론으로서 소명감을 갖고 문제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사실 기독 언론 중에 이 역할을 하는 곳이 드뭅니다. 기독신문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최근 기독신문이 교회와 사회의 이슈에 대해 심층 분석하고 기사를 쓰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신문에 필요한 점은 외부 필진을 좋은 분들로 많이 섭외하는 것입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읽을거리를 주는 사람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단 기관지로서 기독신문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탁월한 기사와 탁월한 필진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신 목사: 사실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교단지라는 한계에 갇혀 교단의 한계와 교단 소속 목회자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교단의 대표적인 목회자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켰고, 노회에서 그에 대한 문제로 격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신문이 그 보도를 깊이 있게 하지 않습니다. 교단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말을 못하면 안됩니다. 비록 아파도 자신을 바르게 성찰할 때 영향력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기독신문이 이런 부분을 말해야 합니다.
 
강 국장: 기독신문이 가진 한계를 잘 이해하시고 좋은 대안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지난해 교수님께서 ‘기독교 문화변혁, 핵심읽기’라는 제목으로 1년 동안 좋은 글을 연재해 주셨습니다. 사회 이슈를 기독교세계관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매우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앞으로도 교수님처럼 좋은 필진을 섭외해서 독자에게 읽을거리를 주는 신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신 목사님의 지적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무거운데, 잠깐 편한 이야기를 할까요. 두 분은 개인적으로 기독신문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으십니까?
 
신 목사: 대담 요청을 받고 그 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저에게 기독신문은 정보전달의 통로이자 희망과 용기를 얻는 매체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이 모두 흩어져 각지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기독신문을 통해 신학교에서 열정을 나눴던 동료와 친구들이 나와 같은 열정으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기사를 보며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나와 같은 생각으로 함께 가는 동지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격려도 받고 용기도 얻습니다. 또한 실제적인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특히 시론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사실 사설은 교단지 분위기가 많이 납니다. 교단 정치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올라옵니다. 앞서 기독신문이 교단 목회자나 교회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깊이 보도를 못한다는 말을 했는데, 오히려 사설에서 이런 부분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교수: 저는 문화면을 깊이 있게 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요즘 찬양사역자들이나 새로나온 책 등 기독문화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기독신문이 그런 면에서 특화된 자료를 주고 있습니다.
 
강 국장: 그러시군요. 이제 주제를 바꿔볼까 합니다. ‘언론으로서 기독신문의 미래’에 대해 탁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 언론사를 보면, 우리나라 초기 언론사는 모두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돼 출발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기독 언론의 자리가 너무 축소됐습니다. 기독언론의 영향력이 사회에 미쳐야 할 텐데요, 그렇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신 교수: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언론은 지금처럼 교회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지만 그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 시대 기독인들은 뛰어난 지식인들로 언론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의 절망 상황에서 소망을 주려는 소명과 열망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시각이 좁습니다. 외연을 넓히려고 하지만, 기독신문도 교단이나 교회 안에서만 역할을 하려는 한계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한정시키는 것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교단지로서 교단 소속 목회자들을 위한 역할과 그에 따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징 때문에 역량을 교단과 교회로 한정시키고 안주하면 안됩니다. 칼빈주의의 재부흥을 일군 화란 개혁주의의 힘은 언론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에게는 일간지 <슈탄타르지>와 주간지 <헤라우트지>라는 두 개의 신문이 있었습니다. 카이퍼는 이 언론에 매번 기고를 했고,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카이퍼의 글을 자녀에게 읽어주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교육이 화란을 변화시켰습니다. 기독신문이 스스로 역할을 한정시키지 말고 사회 모든 영역에 역량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강 국장: 현재 사회가 급변하면서 언론 환경도 놀랍도록 변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사양 산업이고, 종이 신문이 사라질 것이란 주장도 제기됩니다. 기독신문은 급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신 교수: 사실 기독신문이 변화하는 언론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세상의 언론 상황을 따라가야 하는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종이 신문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종이 신문이 갖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세상 언론은 동영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독 언론들도 동영상을 강화하고 설교 방송도 합니다. 동영상 미디어가 갖는 의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 방송과 같은 동영상물의 질이 대체로 낮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교 방송은 대부분 언론사에 돈을 내고 합니다. 돈을 내고 하기에 언론사는 무조건 방송해야 합니다. 정말 설교라고 할 수 없는 방송까지 내보내야 합니다. 이런 동영상 방송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도 합니다. 차라리 사진을 통해 시대에 맞는 감성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여깁니다. 앞으로 사진의 지분이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비슷한 사진이라도 기독교적 감각을 갖고 있는 훌륭한 사진들이 있습니다. 기독신문은 가장 빨리 각인되는 것이 이미지 곧 사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신 목사: 종이 신문이 사라진다는 것에 동의하기도 싫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종이 신문의 장점은 모든 기사를 구석구석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신문은 그것을 못합니다. 종이 신문이 갖고 있는 장점과 풍부함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종이 신문의 위기가 오겠지만, 이런 특성을 더욱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짧지만 강력한 울림이 있는 글, 그런 작은 것들이 주는 장점을 살려내야 합니다.
 
강 국장: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신문을 위한 당부의 말씀 부탁합니다.
 
신 목사: 부탁보다 간청하고 싶네요. 우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건강한 교회’를 제시하는 알토란같은 기획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한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에 대한 지표를 제시하고, 성도들이 그 지표를 통해 자기 교회를 점검해보는 기획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사회 양극화가 심한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극화 문제를 개혁주의 신학, 기독교세계관 관점에서 점검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공의가 살아있는 사랑의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부자되는 것을 멈추고 자발적 불편을 살아가는, 그런 신앙으로 계도하는 글을 써주십시오. 기독신문은 창간 후 지금까지 ‘1.개혁신앙의 보수 2.교회의 단결 3.성도의 교제’라는 사시를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시를 늘 기억하고, 기사를 통해서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보호하는 열정을 쏟아주십시오. 코람데오 정신을 잃지 말길 바랍니다.
 
신 교수: 언론은 공동체의 통로이자 광장입니다. 기독신문은 교단 공동체의 모든 이야기가 나오는 광장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감동을 주는 신문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사람은 새롭든지, 감동을 주든지, 열정을 느끼게 하든지, 이 세가지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독신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사, 감동을 주는 기사, 열정이 담긴 기사를 써 주십시오. 기자 한명 한명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에 헌신된 일꾼이 되어 주십시오. 독자들도 이것을 느끼고 기억합니다. 아울러 기독신문은 교단지이지만, 교단 공동체의 아픔을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실을 소통하게 하는 일입니다. 진실 없이 어떻게 화평과 공의를 이루겠습니까. 교단의 아픈 일도 보도를 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 말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 큰 교회에 얽매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신문이 진실을 소통하는 광장이 되길 바랍니다.
 
강 국장: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두 분의 격려와 고언을 깊이 새기고 기독언론으로서 사명감과 열정을 갖고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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