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밖으로 나온 챔피언
‘완생’을 꿈꾸며 힘찬 ‘킥 턴’

대중의 사랑 받았던 배영 세계신기록 보유자, 부산서 카페 사장으로 새 출발
어머니 유현경 씨 “아들은 하나님의 보배…포기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갈 것”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배영 200m 세계신기록보유자’ 이렇게 설명하면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김진호> 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화려했던 김진호 씨가 수영선수 생활을 접고, 그의 어머니 유현경 씨와 함께 부산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KBS 다큐멘터리와 MBC ‘일밤-진호야 사랑해’에 출연하여 한 때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던 화제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카페 사장으로 변신하여 세상을 향해 겨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세상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아직 봉오리도 피지 않은 신출내기 사업가(?)다.

김진호 씨(29)는 지적장애인이다. 더 쉽게 말하면 자폐성 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장애인·비장애인을 통틀어 국내에서 유일한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동등하게 비교할 수야 없지만, 수영선수 박태환도 아직까지 세계신기록은 갖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김진호 씨의 세계신기록 보유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런데 김진호 씨 본인은 정작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것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저, 즐겁게 수영을 했다는 것만 추억 속에서 인지하고 있다.

▲ 국가대표 장애인 수영선수에서 카페 사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진호 씨.

“수영은 진호가 자폐의 딱딱한 껍질을 벗고 나오는 물꼬였습니다. 자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복된 훈련을 실시하다가 보니까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동하게 되어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선수로서 한계를 벗어나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카페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진호에게 수영이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면, 지금은 카페를 매개체로 하여 세상과 연결하고자 합니다.”

어머니 유현경 씨는 은퇴의 의미도 모르는 진호에게 사는 목적을 뚜렷이 심어주기 위해 카페를 설립했다며, 카페의 명함도 아들 이름으로 해줬다고 말했다. 왜, 하필이면 카페를 택했냐는 질문에 사람을 좋아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진호의 성격과 커피를 만드는 반복된 연습이 수영과 적합하여 카페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환언하면 자폐성 장애인의 아들이 사회에서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을 기도하며 찾다가 카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1986년 진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유복한 의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돌이 될 때까지만 해도 진호는 부모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 국가대표 장애인 수영선수에서 카페 사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진호 씨의 어머니 유현경 씨.

“친구들 모임을 가더라도 또래끼리 소통은 커녕 말도 안하고 눈 맞춤도 안하는 거예요. 이상한 괴성을 지르거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혼자서 외톨이처럼 노는 겁니다. 그래도 내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라며 기다렸죠.”

그저 발달이 늦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호가 32개월 될 때, 대학병원에서 자폐적 성향이 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치료와 재활에 사활을 걸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쫓아 다녔다. 청각치료센터를 비롯하여 각종 병원을 다녔지만, 호전되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사소한 습관부터 읽고 쓰기를 반복하여 가르쳤다.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지만,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입학한 지 42일 만에 그만두었다. 말이 자퇴이지, 선생님은 진호를 가르칠 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권고퇴학이었다.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졌다. 진호와의 ‘사투’도 힘들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따가운 시선 또한 견디기가 힘들었다.

1994년 진호가 10살이 되던 봄, 엄마는 장애아를 위한 통합교육 지원실이 있다는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를 무작정 찾아갔다. 중앙초등학교는 유치원부터 올라온 아이들로 이미 정원이 다 차 있었다. 진호가 입학할 여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어렵게 조용기 목사의 추천서를 받아들고 다시 찾아갔다. 2학년 복학이 불가했기에 진호는 1학년 특수반에 새로 입학했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입학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꿈도 못 꾸었을 겁니다. 입학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유현경 씨는 아들의 얘길 꺼내며, 삶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을 수 차례나 반복해서 말했다.

중앙초등학교에는 축구 농구 등의 구기는 물론 수영 배드민턴 심지어 태권도와 장구 등의 각종 달란트 교육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진호는 수영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특수아동 지원실에서 일주일에 한번 실시하는 수영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른 곳에서는 소란스럽고 산만하게 굴던 행동이 자주 드러났지만, 수영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진호는 조용했다.

“진호가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무척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치료 차원에서 수영을 시켰습니다. 행동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샤워장에서 샤워하는 방법을 몰라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 많은 날을 인내하며 가르쳤습니다.”

 

엄마는 진호 뒷바라지를 위해 눈물로 꽃을 피웠다. 매일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호는 5학년이 되어 수영부에 들어갔다. 25명의 수영부원 중 17명이 중도에서 그만두고 8명이 남아 있었다. 수영선수가 부족한 터라 코치가 일단 테스트라도 할 겸 진호를 수영반에 넣어보자고 제안했다.

유현경 씨는 탈의실 사용법, 소지품 관리, 수영장에서 예절 등을 매일 비디오로 촬영하여 진호에게 개선점을 보여줬다. 아이를 위해 자진해서 수영부 총무를 맡아 연습장과 시합장을 가리지 않고 동행했다. 6학년 때부터 진호는 경기도 수영대회에 입상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수원북중학교에 수영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수원북중은 수영부는 있지만, 수영장은 없었다. 오전에는 특수반에서 공부하고 오후에 개별적으로 수영을 했다. 코치도 없어 사비로 개인코치를 구해 일산 고양 평택 등지를 떠돌이처럼 돌아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어 체육고를 알아보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경기성적을 문제 삼더니 장애아를 입학시킨 선례가 없다는 이유를 대며 정중하게 입학을 거절했다. 그래도 길은 있었다.

“진호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했는데 부산체고에서 감독과 교장이 이를 알아보고 선뜻 특기생으로 받겠다는 겁니다. 집은 서울이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수원에서 다니고, 다시 부산의 체육고에 보내려니 답답했지만, 과감히 선택했죠. 진호를 위해 부산으로 연고지를 바꾼 겁니다.”

2005년 9월 체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대회 배영 200m에서 진호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땄다. 2007년 8월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정신지체수영선수권대회에서 배영 200m에서 진호는 또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진호는 아쉽게도 지적장애인 수영종목이 아예 없어 2008년 장애인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2009년 9월 체코에서 열린 국제지적장애인경기연맹 글로벌게임에서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2012년 5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대회 배영 200m, 배영 100m, 자유형 200m에서 각각 1위를 하면서 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진호가 출전할 장애인올림픽에 지적장애인 배영 200m 등의 종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현경 씨는 아들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고, 나이도 고려하여 은퇴시켰다.

수영은 진호에게 삶이자, 신앙이었다. 그동안 진호네 가족은 진호가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수영을 하면서 기쁨을 찾고,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는 것에 큰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에 나가 일반인과 함께 어울려 생활을 하고, 스스로 길을 찾는 것에 소망을 걸어야 할 때가 되었다.
 

▲ 김진호 씨가 직접 뽑은 ‘김진호 표’ 카라멜 마끼아또.

“진호에게 맞는 일을 해 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단순히 커피만 뽑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고 주방도 관리하고, 청소도 하고, 하루 매상관리도 혼자 할 수 있도록 배우고 있습니다. 2년이 지났는데 곧잘 합니다.”

얼마 전에 진호 씨는 엄마가 임플란트를 하여 까만 실로 입술을 꿰맨 것을 보고 “엄마, 양치질 살살 하세요. 이에서 피나요.”라고 위로했다. 지난 여름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냉면 사다 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유현경 씨는 그런 말은 자폐인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며 사소할지 모르지만, 그 날은 하루 매출보다도 더 행복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처음에 카페를 시작할 때 진호 씨는 엄마를 밖으로 끌고나가 따귀를 때려 안경이 깨지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진호가 어릴 때 이상한 행동을 하면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배드민턴 채로 사정없이 때리고 심지어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발로 밟고 손찌검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모질게 키우기 위해 제가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지금은 하나씩 결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자식은 포기가 안됩니다.”

유현경 씨는 철야예배를 기쁨으로 드리고 와서 현실에서 진호가 이상한 행동을 취하면 차라리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 십번도 더 했다며, 어느 날, “네가 진호를 진심으로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회개했다고 고백했다.

그 때부터 유 씨는 내가 바뀌어야 진호가 바뀐다는 것을 깨닫고 기쁨이 뭔지 알았다고 한다. 그의 핸드폰에는 아들의 이름이 ‘보배’로 저장되어 있다.

“저한테 아들은 스승입니다.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구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보배로운 존재지요.”

엄마랑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호 씨가 두 손을 곱게 모은 채 불쑥 찾아왔다.
“강석근 아저씨, 세뱃돈 주세요.”

참으로 순진무구해 보였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며 바로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놨다.
국가대표 출신 장애인 수영선수의 초보 사회생활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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