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영 목사(현리교회)

 
인간의 본성 의지 속에 희로애락이 있다.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은 희(喜)와 락(樂)일 것이다. 그러나 죄인 된 인간의 유한적 생활 속에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怒)와 애(哀)가 곁들어 함께 산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이나 종교적 질서 속에 머무는 우리 인간은 그 근본 본능이 노와 애 속에서 탈피하려는 속성이 신을 의지하는 방편으로 탈출구를 좇는지도 모른다.

21세기 들어 강대국 간에 새로운 신냉전 질서가 도래되면서 지역 간 민족대립과 국지전 등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는 앞을 예측할 수 없고 소망 없는 슬픈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한반도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끔찍한 사건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은가. 4월 16일 진도 앞바다 세월호 사건은 어느 것보다도 더 슬프고 아픈 사건이다. 5000만 전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졌고, 구원파라는 이단이 그 배후세력의 실체로 드러나면서 수많은 의혹 속에 혼돈이 더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 신앙인들은 이 슬픔과 고통, 국가적 민족적 난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가야 하는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정작 울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으리라’(욘 3:5∼6) 이제는 슬픔과 고난의 연속을 끊고 새로운 희락으로 계시의 말씀에 순복하여 이 민족이, 특히 크리스천들이 진정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애통이 변하여 위로의 복으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가야 한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현실도취나 안주보다도 미래지향적, 소망적, 긍정적 믿음에 있다. 크리스천들만이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이 귀한 진리를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나부터, 내 가정부터, 내 교회부터, 내 교단부터 실천하는 작은 불꽃을 점화해야 한다. 신실한 말씀 속에 생활을 접목시킴으로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위로로 승화시켜가야 한다. 그런 후 이 놀라운 은혜 체험과 위로를 누룩이 퍼지듯이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소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이 민족이 언제까지 슬퍼할 것인가? 모든 크리스천들, 특히 사명자들은 바른 복음적 신앙관을 말씀의 계시 속에 새롭게 정립해 예수님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신앙적 직업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직업은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불신자들에게 말씀의 진리를 전하고,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서 하루하루 실천해 빛과 소금처럼 열매의 결정체를 맺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인가 물으며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하셨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겉옷까지 주고, 10리를 동행하고, 거절하지 말라’고 철저히 이타적인 가르침을 주문하셨다.

우리 모두가 시대적 아픔에서 진리를 통해 치유받자. 공황상태에 있는 이 민족과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 크리스천들의 치유된 위로의 삶을 보여주고, 전하고, 증거하는 사명이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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