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명렬 목사(대전남부교회)

 
얼마 전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떠났다.

한국교회는 교황과 로마교회에 대해 신학적으로는 할 말이 많았다. 교황이 집례한 성모승천축일 미사나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것이라 힘주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열광한 그의 도덕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빈약했다. 더욱이 한국교회의 자화상 앞에서는 얼굴이 붉어졌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 주님의 선언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서는 박해와 핍박을 받았지만, 언제나 그 사회에 도덕적인 우위와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결코 참된 교회는 도적적인 문제로 인하여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다. 교회가 돈에 대한 탐욕과 성적인 추문으로, 그리고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세상의 비웃음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교회가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회의 아픈 상처와 병을 치료해야 할 교회가 자기 문제의 덫에 걸려있고, 교회 안의 분쟁과 비리의 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교회는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하면서, 자기 비리와 죄를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소망이 없다.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다.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모습이 없이는 교회 안에 만연한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과 영적인 무기력을 극복할 수가 없다.

이 일에 우리 총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총회는 단순히 각 노회와 교회에 행정서류나 발급하는 기관이 아니다. 더욱이 노회나 지교회를 상대로,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일명 ‘갑질’을 하는 권력기관은 결코 아니어야 한다. 개혁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진리와 행위와의 관계에서 보루가 되어야 한다.

총회는 그 동안 이슈가 되어온 아이티 구호금 문제와 은급재단 문제 등 당면한 문제들을 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그 바른 처리는 다름 아닌 공평과 정의의 원리이다. 정치적인 해결과 적당한 처리는 답이 아니다. 범죄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빠져나가게 하고, 엉뚱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거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여 책임의 당사자는 아무도 남지 않게 하는 방법은 공평과 정의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에 따라 전국교회의 뜻을 받들어 총회에 임하는 총대들은 이 점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감히 지금 우리 총회는 바른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총회와 전국교회가 살 길은 부패와 비리의 문제를 바르게 정리하고 개혁하는 길 밖에 없다. 99회 총회의 바른 결정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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