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펼쳐진 하박국 3장, 길을 예비하시다

 

1986년 나는 논문을 쓰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나는 예배당을 찾아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일 년에 두 편씩 네 편의 논문을 쓰고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정말 예수님 잘 믿고 싶어요.’

미국에는 ‘아나신’이라는 강력한 진통제가 있었다. 나는 두통을 잊고 실험에 매달리기 위해, 그 진통제를 땅콩 먹듯이 먹어댔다. 확실히 그 약은 두통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속이 쓰렸다. 나는 2000개의 진통제와 그 약기운을 버틸 우유를 들고 실험을 시작했다. 첫날의 기도 덕분인지, 나의 죽을 각오 덕분인지 실험은 근사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3개월째, 모든 것이 뒤집어지더니 내 실험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온갖 생각,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했지만 실험은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 김동수 교수가 캄보디아 단기의료선교 기간 중 아이들에게 급식을 하고 있다.

해가 두 번 바뀌고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날이 넉 달 밖에는 남지 않게 되자 나는 초조한 마음에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3일 동안의 금식기도를 마치면서 나는 교회로 가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제가 이제는 너무 지쳤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세요.”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나는 성경책을 폈다. 무심코 펼쳐진 페이지에는 하박국 3장 17절에서 19절이 주황색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어오셨다.

“얘야, 하박국 기자 봐라. 전쟁이 나서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단다. 포도도 없고, 무화과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도 없고, 소도 없고, 양도 없고, 식물도 없고, 굶어 죽게 생겼단다. 그런데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그런다. 그런데 너는 그까짓 논문 때문에 그러니? 너 그 논문 없어도, 내가 너를 구원해 주고 너에게 생명을 준 나 하나만을 위해, 나 하나 때문에 기뻐할 수 있겠니?”

나는 그때 깨달았다.

“하나님 제가 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실험 안 되도 좋습니다. 논문 못 만들어도 좋습니다. 이거 다 내려놓고, 저는 빈털터리로 한국 가도 좋습니다. 한국 가서, 교수 세미나에서 ‘너 미국에 가서 뭐하고 왔냐?’ 그러면 ‘나는 미국에 가서 정말 한 거 없다. 실험은 열심히 했지만 제자리만 맴돌았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왔다. 당신들도 예수님 믿고 구원을 얻고 영생의 기쁨을 맛봐라’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정말 홀가분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실험에 임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안 되던 실험이 드디어 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으니 그분이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마침내’라는 단어가 이제 때가 이르른 것이었다. 무려 10개월이라는 시간,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마침내 곧’이라는 단어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10개월이나 되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