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앙 참혹한 만행, 그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잘못된 신앙 참혹한 만행, 그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영화 리뷰] <천번의 굿나잇>
  • 송상원 기자
  • 승인 2014.07.15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쟁의 참상 기억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종군기자 갈등 그려
자살테러 과정 그린 초반 10분의 연출, 충격 넘어 분노 일으켜


허가가 떨어지자 차도르를 입은 한 여자가 차에서 내린다. 이슬람 여성 같지만 아니다. 손에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는 종군기자 레베카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슬람 전통 장례식. 애도하는 사람들이 망자를 둘러싸고 있다. 레베카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한 컷 한 컷 정성껏 촬영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망자가 눈을 떴다.

장소를 옮겨, 몇몇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망자였던 여인의 몸을 깨끗이 닦아냈다. 다음 장면이 충격적이다. 여인의 몸에 수십 개의 폭탄을 동여맸고 그 위에 차도르를 입혀 위장했다. 말로만 듣던 자살테러였다. 죽음을 예고하고 미리 장례를 치른 것이다. 한순간에 자살테러범이 된 여인은 시내로 향하는 차량에 오른다. 레베카는 동승을 요청한다.

도심에 진입하자 긴장감이 조여온다. 경계초소도 별 탈 없이 지났다. 번잡한 시장골목에 도착할 즈음에 하차를 요청하는 레베카, 차에서 내리면서도 마지막 한 컷을 담는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군인들이 급히 차량을 수색한다. 뒷걸음질 치던 레베카는 외쳤다. “폭탄이 있어요. 폭탄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순간 시장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발의 위력에 레베카도 재속에 묻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레베카는 카메라를 들어 참상을 기록한다. 그리고 다시 쓰러진다.

두바이병원, 레베카는 혼수상태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환상을 본다. 그랬다. 그녀는 세계 최고 종군기자면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였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매번 사고에 노출된 레베카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불안하다. 남편 마커스와 두 딸은 레베카의 위험한 열정을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종군기자로서 사명감이 강한 레베카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 줄리엣 비노쉬의 열연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천번의 굿나잇>. 세계 최고의 종군기자이자, 한 가정의 엄마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인상적인 감성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 <천번의 굿나잇>은 주인공 레베카가 종군기자와 아내 엄마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삶의 기로에 놓이며 겪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따라서 전장과 가정이라는 이질적인 두 공간이 영화의 주요배경이다.

전장을 배경으로 한 연출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프가니스탄, 케냐, 모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은 매우 사실적이다. 특히 자살테러 과정을 그린 초반 10분의 적나라함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액션신도 기대이상이다. 80년대 종군기자로 활약한 이 영화의 감독 에릭 포페 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다. 예술성과 블록버스터를 모두 갖춘 영화를 뜻하는 ‘아트버스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평가다.

가정에서는 레베카로 분한 줄리엣 비노쉬의 감성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역시 단순하지 않은 배우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할 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장면, 가족 간의 갈등이 커져가는 순간마다 그녀의 연기는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특유의 모나지 않은 차분한 연기를 펼치면서도, 때로는 도발적인 대사와 행동을 선보이며 관객들이 자극한다. 시간이 흘러 50대 배우가 됐지만 그녀의 저력은 여전했다.

종군기자 출신 감독 에릭 포페와 명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적절한 조합은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결과를 냈다.

하지만 연출과 촬영, 액션 등 다양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특별상은 다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군기자와 가정주부 사이에서 고민했던 레베카처럼, 감독도 이 영화의 구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종군기자의 사명감에 빠져들 만하면 가족애로 초점을 돌리고, 반대로 기자의 본능을 선택하는 순간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는 장면이 중첩돼 혼란스러운 면이 짙다. 가족멜로와 종군기자 이야기 사이에서 영화의 중심 줄기를 선택했다면 더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들었을 것이다. 그 점이 아쉽다.

이 영화는 기독교 영화도 아니고,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개하는 이유는 문득문득 “우리에게 신앙이 있어 다행이다”는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결정으로는 영화 곳곳에서 솟아나는 갈등과 번뇌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국 인간은 본능과 자아를 내세우는 존재이다. 하지만 레베카와 그녀의 가족에게 신앙이 있었다면,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잘못된 신앙이 부르는 재앙을 조명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테러 과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들의 수법은 더 치밀하고 악랄해져 급기야 어린 소녀까지 폭탄옷을 입힌다. 삐뚤어진 신앙은 이미 종교가 아니고 만행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을 고발하던 세계 최고의 종군기자도 한계에 부딪히며 털썩 주저앉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