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식 목사(대길교회)

 
고 이기섭 선교사 1주기를 즈음하여


▲ 박현식 목사
제가 섬기는 본 교회에서 인도 선교를 시작한지 어언 30년이 넘었습니다. 25년 전 처음 인도 콜카타를 방문하였을 때에 하늘도 다르고 땅도 다르고, 냄새는 더욱 괴이하고, 사람도 이상하여 이방의 두려움이 엄습하였으나, 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이제는 하늘과 땅도 친숙하고, 카레와 음식향의 냄새는 물론이고 인도 사람들의 표정과 언어도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척박한 선교 현장과 고달픈 목회 현실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사역하시는 인도의 한국 선교사님들과 현지 교역자들이 인도의 검은 대륙에 빛나는 보석과 같이, 궁창의 빛나는 별처럼 귀할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시지만, 특히 본 교회에서 파송하고 지원하였던 콜카타의 로이 변상이 선교사를 중심으로 다수의 교육 기관이 개척 후원한 120여 교회, 그리고 남부 뱅갈로르의 고 이기섭 선교사가 세운 콜인신학교는 주의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배우고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한 때 인도 선교를 떠나려고 하였으며, 수년간 방문을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GMS 파송 평신도 선교사 1호인 이기섭 장로께서 갑자기 선교 현지에서 쓰러졌습니다. 반듯한 후계자도, 유언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당신의 노구를 주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대길교회 선임 장로로서 원로장로 추대를 1년여 남기고 사표를 내시면서 오직 인도선교를 지원해 달라고 강조하시던 장로님이셨습니다.

천국에 가셔서도 고인은 최선을 다하였으니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 교회 목사로서 필자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언젠가 천국에 가면 따로 할 얘기가 있고 주님 앞에 감사하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날 제가 인도 선교 현장의 일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양하고 피하려고 하였으나, 지우지 않은 본인의 이름 석 자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본인의 부족함과 불충함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고인의 숭고한 뜻을 새기며 다시금 인도 선교를 위하여 헌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총회도 안 나가고, 신학교는 물론이고 GMS조차도 출입하지 않으려고 작심하였으나, 그가 저를 불러내었습니다. 사양이 미덕이고 백의종군하는 것이 편하고 자유로우나,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라면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으며, 외면할 수 있습니까? 한국 콜인신학교 재단 부이사장으로, 인도 정부에 등록된 세 명의 설립자 중의 한 사람으로, 더욱이 유사시 선교의 자산을 지켜야할 사람으로 등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본인은 잊고 있었으나, 그 분은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어서 교회 앞에 보고를 하고 인도양을 건너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신학교정에 안치된 고 이기섭 선교사의 무덤 앞에서 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가끔 되새겨 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주님께서 제가 이 사명을 감당하며 장로님의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힘주실 것을 믿습니다. 선교사 가정을 지켜주시고 인도에 주님을 찬양하는 목소리만이 가득차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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