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특집


침몰 사고 현장서 묵묵히 봉사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나다

아이들은 진도실내체육관에 도착해서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젖은 몸과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한 순간의 공포, 바로 그 악몽 같은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한 학생과 승객들을 팽목항에서부터 따라온 전정림 목사(진도 칠전교회)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들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는 표정을 읽었다. ‘아차, 바닷물에 빠져서 휴대폰이 모두 고장 나 있겠구나!’

전 목사의 휴대폰은 금세 아이들의 공중전화가 됐다. 휴대폰 저편에서 부모들의 두려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구조 후에도 한참 동안 서로를 애타게 찾았던 가족들은 그렇게 서로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인 팽목항에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원들과 진도 지역교회 교인들이 분주하게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두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1학년 요섭이(가명)의 경우는 함께 여행 온 부모님과 형을 결국 만나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해외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첫 가족여행을 떠난 길에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죠. 먼저 탈출했던 부모님이 애를 찾으러 다시 배로 들어갔다가 결국 못나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마음 아팠습니다.”

전 목사가 곁에 두고 보살피던 요섭이를 뒤늦게 놀라 달려온 삼촌 품에 안겨줄 무렵 이미 체육관에도, 팽목항에도 실종자 가족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 사방에서 울부짖음과 아우성이 가득했다. 당국의 발표나 언론의 보도내용은 수시로 오락가락하고,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울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다.

다행히 뉴스가 전해지기 무섭게 현장으로 달려온 진도군교회연합회(회장:문명수 목사)와 목포노회 진도시찰 소속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이 발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팽목항에 가장 먼저 캠프를 차리고, 다음 날 새벽 서울서 내려온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조현삼 목사)과 협력해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대원 등을 위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도서지역 작은 교회들은 없는 살림에도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팽목항에서 가까운 새진도교회에서는 매일 400인분의 밥을 준비하겠노라고 약속했고, 24시간 캠프를 운영하기 위해 교단별로 돌아가면서 당번을 맡기로 정했다.

팽목항에는 구세군과 국민은행의 연합캠프도 차려졌다. 첫날부터 안건식 구세군 전라지방 장관을 필두로 구세군 목회자 20여명이 달려왔다. 밥차와 빨래차까지 동원해 펼친 이들의 조직적인 봉사활동은 현장 분위기를 정돈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로 마련된 진도군 실내체육관에는 (사)이랜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진도노인복지관(관장:박철민) 직원들과  지역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된 봉사캠프가 세워졌다. 특히 진도노인복지관은 사고소식을 듣자마자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실내체육관에 출동해 실종자 가족들 지원에 나섰다. 언제 구조작업이 완료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디찬 체육관 바닥에 잠을 청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담요와 수건, 옷 등 생필품들을 지급하고, 먹을거리를 챙겨주느라 이곳 손길도 밤늦게까지 분주했다.
“밥이 부족해요, 밥이!”

이틀째가 되자 봉사캠프들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경황이 없어 먹을 것을 건네줘도 쳐다볼 여유도 없던 가족들이 조금씩 요깃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경찰 군인 자원봉사자 등 현장인원이 늘어나면서 팽목항 쪽에서는 준비한 음식과 물품들이 금세 동이 났다.

밤새 부두 곁을 맴돌며 아이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가족들과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봉사자들은 쉴 틈도 없이 새로 지은 밥과 국을 퍼서 나르고, 부족한 물품들을 채우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

지역교회들과 성도들의 가정 등에서 긴급히 수집한 구호물품이 점심 무렵 도착해 겨우 숨통이 트였다. 서울광염교회 사랑의교회 삼일교회 등 전국 각지의 교회와 단체에서 성금과 구호품도 본격적으로 답지했다. 먹을거리 위주로 채워졌던 연합봉사단 캠프에는 화장지 담요 치약 건전지에 생리대까지 온갖 물품이 쌓여 작은 마트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박철민 진도노인복지관 관장은 “사고 첫날 오후에는 현장에 제공할 생필품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틀째부터는 기독교구호단체들이 속속 현장에 도착해 서로 협력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있다”며 “무엇보다 자녀의 행방을 알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힌 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에 힘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전반의 분위기는 그 사이 더욱 심각해졌다. 구조작업은 지지부진했고, 게다가 진위여부를 쉽게 알 수 없는 온갖 풍문들까지 수시로 돌아 가족들을 격앙시켰다. 특히 1000여명의 가족이 한 데 모인 진도체육관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경찰책임자와 장관과 국무총리, 심지어 대통령까지 다녀갔음에도 유족들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안산 단원고 교사인 시동생이 실종자 명단에 있어 전주에서 급히 달려왔다는 김사라 전도사(가명)는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주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노력들이 너무 부족해서 다들 속상해한다”고 전했다.

그렇게 침울해하거나 반대로 흥분해있는 실종자 가족들 틈을 오가면서 진도중앙교회와 칠전교회 등 지역교회 봉사자들은 소리 없는 위로를 보냈다. 나이든 장로와 권사 심지어 주일학교 학생들까지 포함된 봉사자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사흘째 아침, 밤사이 발견된 사망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안산 단원고 교감의 자살 소식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극도로 흉흉해졌다. 침착하던 이들까지 냉정을 잃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우울증이 전염병처럼 번진 듯했다. 이제 그곳에는 또 다른 보살핌이 필요했다.

그날 아침, 강진 마량중앙교회에서 사역하는 김희근 목사가 체육관에 나타났다.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김 목사는 이웃한 진도에서 벌어지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았다. 김 목사 일행은 곧바로 체육관 한쪽에 상담부스를 차린 후, 가족들의 불안하고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팽목항에서는 목포에서 찾아온 용당중앙교회 성도 20여명이 연합봉사단을 거들고 나섰다. 지친 봉사단원들을 대신해 급식을 하고 청소도 하면서 현장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들처럼 단체나 개인으로 원근 각처에서 찾아와 자원봉사에 참여하려는 발걸음이 온종일 이어졌다.

진도군교회연합회도 경황없는 가족들의 분위기 때문에 한동안 망설였던 사역을 드디어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체육관 인근 공설운동장의 부속건물 한 곳을 빌려, 아침 6시와 저녁 8시 등 하루 두 차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예배를 열기로 한 것이다.

커다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원인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는 그 상황을 수습하고, 쓰러진 이들을 일으키는 자리에 서있어야 한다. 진도에도 바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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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 이끄는 조현삼·문명수 목사

“슬픔 나누며 소망 전합니다”

온 종일 내리는 비에 팽목항 쪽에서 봉사하던 목회자들은 흠뻑 젖어있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조현삼 목사(광염교회)와 진도군교회연합회 회장을 맡은 문명수 목사(만나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문명수 목사는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현장으로 달려와,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세월호 침몰사건 피해자 가족 곁을 매일 지키고 있다. 자신도 고등학생 아들을 둔 상태라 안산단원고 학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첫 날 오전에는 매우 희망적이었죠. 모두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나와서 금방 해결될 수 있겠구나 했는데,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는 것을 보고 교회연합회 임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연합회가 사고가 발생한 지 수 시간 만에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진도군 교회들의 교파를 초월한 결속력이 워낙 강하고, 씨뮤직페스티벌이라는 국제행사를 매년 치러온 경험이 쌓인 덕분이라고 문 목사는 설명한다.

조현삼 목사도 사고 당일 수요예배를 마치자마자 광염교회 교우들이 중심이 된 봉사단과 함께 진도로 출발해 이튿날 새벽 팽목항에 도착했다. 사전에 교회연합회와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긴급구호에 필요한 식료품과 생필품도 주문해 놓은 터라 봉사는 원활히 이루어졌다.

지치고 두려운 상태에서 기상악화로 추위에까지 시달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손수 전기난로를 설치하고, 우비를 입혀주는 등 앞장서 현장을 누빈 조 목사는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해 가족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태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속에서 고단하고 힘겨운 봉사일정을 계속 이어가는 두 사람은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현장에서 전력을 다해 가족들과 구조대원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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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 어떤 단체들이 봉사하나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독교 구호단체들은 일제히 사고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으로 모여들어 실종자 가족 돕기에 나섰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진도군교회연합회, 한국구세군, (사)이랜드복지재단 등은 부활주일인 4월 20일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예배를 열고 피해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진도군교회연합회
천재지변이나 재난이 발생할 때 국내외 어느 곳을 막론하고 신속하게 구호활동을 펼치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 구호텐트는 이번에도 팽목항 현장에 가장 먼저 설치됐다. 앞서 사고현장에서 구조된 승객들을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봉사에 뛰어든 진도군교회연합회도 연합봉사단에 합류해 함께 활동 중이다. 실종자 가족은 물론이고 구조작업에 참여하는 군인 경찰 공무원과 민간 자원봉사자, 취재진 등 수 백명에게 따뜻한 밥과 국 등 음식과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다.

구세군

사고 첫날 구세군 전라지방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은행 봉사단과 연합으로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등지에서 간이식당을 마련하고 급식활동을 시작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구세군 대한본영 전체가 구호작업에 참여하여 밥차와 빨래차를 동원한 조직적인 구호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이랜드복지재단과 월드비전
(사)이랜드복지재단은 부설기관인 진도노인복지관을 통해서 진도실내체육관에 부스를 마련하고, 대한적십자사 등 다른 단체와 지역교회들의 협력을 통해 실종자가족들을 위해 이불 담요 속옷 양말 등 구호물품들을 지원하고 있다. 월드비전 광주전남지부도 현장에 필요한 구호물품을 파악해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난로와 핫팩 등 난방도구들을 제공해 가족들이 추위를 견디도록 돕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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