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교회와 문명
[데스크칼럼] 교회와 문명
  • 이길환
  • 승인 2014.03.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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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영국의 코미디 작가 에리언 셰린의 주도로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800대에 광고문이 붙었다. “아마도 신은 없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는 무신론 광고는 초창기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와 영국 인본주의자협회가 동참하면서 호응을 얻었다.

이에 대해 기독교 측에서는 “신은 있다. 걱정 마라. 인생을 즐겨라”라는 내용으로 반박 광고문을 내는가 하면 오히려 이런 기회가 하나님의 존재를 좀 더 진진하게 생각 해볼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반전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불어닥친 반기독교 정서를 돌리지 못하고 한동안 유럽 일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은 잠시 일부 극성스런 무신론자들의 아우성에 불과했을 뿐 지속되지 못했다. 신을 믿지 않을 지언정 신의 존재까지 부정하기에는 논리적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무신론자는 모든 존재를 물질적, 현상적으로 보는 자들로 근본적 논리가 입증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거나 신에 대한 증오심이 지나칠 때 생겨난다고 한다. 과학적 맹신이나 신에 대한 과유불급이 무신론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방의 근원적 원인은 역사적으로 물과 기름처럼 공존해 온 신학과 과학의 구조적 갈등에서 비롯됐다. 현대문명은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급속도로 발달하는 세상을 교회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고민 중 하나가 신학과 과학의 괴리다. 그러나 과학은 엄연히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창조물들을 발전시키고 번성시킬 의무를 주셨다. 과학 역시 그 범주를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종교를 이단시해 온 과학이 앞으로는 신뢰와 믿음의 과학으로 신앙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교회 역시 과학문명에 대해 전통적 인식의 틀을 바꿔 궁극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로서 수용하는 이해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의 침체 원인 중 하나는 영생의 가치보다 현생의 가치에 치중해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급속히 문명화 되고 있는데 교회는 정체돼 있다. 거기에 교회가 주도적이지 못하고 세상풍조에 휩싸이고 끌려가다보니 자꾸만 본색이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본질은 더욱 곤고히 하되 인식과 수용의 변화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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