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속성은 변질되지 않는 것이다. 본질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예전 한국교회가 성장할 때는 신앙의 중심이 분명했고 순수했다. 교인들은 하나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가난했지만 나누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의 경외심은 각별했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의 중심은 많이 흐려졌고 순수함도 예전 같지 않다. 교회는 마음의 위로나 얻는 의례적인 에벤에셀이 되어 버렸다.

수없이 변절과 회개를 반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에 언약궤를 빼앗기고 아벡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곡절 끝에 언약궤를 다시 찾고 사무엘의 지휘 아래 미스바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 매달리는 대각성에 들어간다.

이후 다시 쳐들어 온 블레셋을 향해 우레를 발동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승리한다. 승리를 기념하여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여호와가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의미로 에벤에셀이라 명명했다(삼상 7:12). 그전 엘리의 며느리이자 비느하스의 아내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갑자기 해산을 하게 되는데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뜻을 가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 이처럼 이가봇과 에벤에셀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운명을 결정한다.

히브리어로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이란 의미가 있는데 사무엘은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흔히 추상적인 지명을 가리킬 때 ‘거기’ 또는 ‘여기’라고 지목하는데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거기는 관찰자 입장에서 끝을 의미하고 여기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에벤에셀은 여기까지 도우셨고 앞으로도 도울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에벤에셀은 전승을 기념하는 하나의 비석이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신앙의 경각심을 새롭게 한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섭리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에벤에셀을 향해 나가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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