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에 시작되는 새해가 경황없이 지나간다. 활동 폭이 좁은 겨울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다 훌쩍 시간이 지나기 마련이다. 연초에 다진 수많은 결단과 희망이 쉬 무너지는 것도 주변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시련의 의미를 알고 인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잘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학문이 높고 지식이 많다고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물론 출세하여 인정받고 존경받을 만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품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은 스스로에게 충실하며 주변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기억한다. 존경의 가치 그것은 연륜에서 비롯된다. 크게는 마더 테레사나 넬슨 만델라 같은 인물들이 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연륜의 흔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못을 박는 노련한 목수의 망치에서는 힘과 균형의 연륜이 묻어난다. 하얀 캠퍼스를 메워나가는 늙은 화가의 붓 끝에서는 노련하고 섬세한 연륜이 피어난다. 배움과 지식의 정도를 떠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노인들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래 연륜은 나무나 식물의 형성층이 기후나 영양 상태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데 이때 목부 횡단면에 나타나는 생장륜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즉 나무를 자른 면에 나타나는 둥근모양의 나이테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연륜은 오랜 동안 쌓은 경험과 숙련의 정도를 의미한다. 시간 속에서 쌓이고 묻어나는 것으로 인내의 힘이 되고 슬기로운 판단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위적 가공이 불가능하고 잘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아니다.

연륜은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물고기 같은 어류에도 뼈나 비늘에 연륜이 서리며, 국가나 사회 같은 공동체에도 연륜의 흔적은 남아있다. 연륜이 있는 공동체는 법과 질서가 살아있고 여유가 묻어난다. 그러나 연륜은 단지 공동체의 규모나 오래된 역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순리를 존중하는 성숙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연륜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