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예수님의 실체와 행적 그리고 그 이적들만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없을 것이다. 실체에 대한 진위에서부터 속성에 대한 의문까지 수많은 의혹과 혼란에서 기독교는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류 역사와 문명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믿음은 의혹과 혼돈 속에서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예수님이 신의 성품을 타고 난 많은 특징 중 하나는 수많은 진리와 명언들을 남겼음에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은 물론 외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련 서적을 배출한 예수님은 직접 책을 쓰거나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 없다.

성경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이적들과 신성한 가르침은 제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하고 전파한 것이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운행하는 것이 신의 존재방식이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실체를 찾는 피조물의 인지본능에 따랐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잠시 세상에 머물렀지만 2000년이 넘는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이라는 가미되지 않은 변화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가공은 인간들이 하는 행위다. 인공적인 것은 스스로를 알리거나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로서 의도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의도적이지 않았고 그의 신성에 대한 진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근래 이단교회들이 무너지는 정통 교회들을 사들여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단들은 인간을 신격화하고 가공된 교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교리를 마음대로 만들어 평화로운 사회와 잔잔한 교회에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킨다. 이단은 한번 시비에 휩싸이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지난날을 회개한다 해도 사람들의 뇌리와 감정 속에 박혀 굴레가 쉬 벗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은 이단 시비에 오르는 것조차 경계하는 것이다.

이단들의 현혹이 그 어느 때보다 극성이다. 이제는 지인들을 끌어들이는 관계전도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교인들은 쉽게 무너지게 돼 있다. 한국교회가 이단 경계령을 내리고, 더 신중하고 예수님의 실체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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