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赦郞)>

다음 중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아닌 것은?
①리어왕 ②햄릿 ③오셀로 ④로미오와 줄리엣

 

학창시절 시험지에서 만나봤을 문제다. 정답은 4번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비교적 수월한 문제지만 3번 오셀로가 골칫거리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이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 역시나 3번 오셀로에 마킹했었다. 변호하자는 게 아니라, 기자뿐만 아니라, 그 나이에 오셀로의 내용을 아는 친구들은 극히 드물었다. 줄거리가 널리 알려진 리어왕이나 햄릿에 비해 4대 비극범주에 손잡고 있던 오셀로는 ‘무조건 외워라’는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었다. 그때부터 오셀로의 존재감은 결정돼 있었다. ‘정답에 가까운 오답’ 딱 그 정도였다.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 중 변두리에 처져 있던 오셀로에 천착해온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뮤지컬대상에 빛나는 <마리아 마리아>의 연출가 성천모다. 셰익스피어 어워즈 젊은 연출가상도 수상한 성 연출은 <오셀로 콤플렉스 이아고>를 시작으로 <사랑하는 데스데모나>, <오셀로와 이아고>에 이어, 이번에도 원작을 각색한 <사랑(赦郞)>을 들고 나왔다.

성 연출가가 오셀로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연극 <사랑(赦郞)>은 인간이 품고 있는 욕망, 시기, 질투, 분노, 살의를 대놓고 분출한다.

밑바닥까지 보여주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2인극 오셀로’ <사랑(赦郞)>이었다. 주요인물을 오셀로와 이아고 2명으로 압축하자 집중이 배가됐다. 두 배우의 행동, 말투, 표정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숨소리의 의미까지 파고들게 하는 효과를 가져 온 것이다.

▲ 오셀로(왼쪽)가 자신의 아내인 데스데모나와 부관 캐시오를 음해하는 이아고(오른쪽)의 계략에 빠져 무너지는 장면.
2인극이라 보니 초점도 주역 김형균(오셀로), 김성겸(이아고)에게 맞춰진다. 두 사람의 연기력이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잣대가 된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대성공이다. 김형균이 곧 오셀로였고, 김성겸이 곧 이아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배우는 4년 전부터 성천모의 ‘오셀로 시리즈’에 줄곧 참여해 왔다. 누구보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고, 성 연출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오셀로와 이아고 사이에 밀고 당기기, 모략, 콤플렉스까지 세밀하게 연기할 뿐 아니라, 다른 주요인물인 데스데모나와 캐시오를 직접화법으로 표현할 때는 능구렁이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용서할 사(赦)와 사내 랑(郞)이 결합돼 제목 <사랑(赦郞)>이 됐듯 작품에는 ‘용서’라는 기독교적 가치가 함의돼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사악한 모습에 용서가 가능할 지 의문이 간다. 성 연출은 “용서라는 가치를 잃어가고 몰아가는데 급급한 우리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이자 제목”이라고 말했지만, 연극 <사랑(赦郞)>이 용서에 대한 정답이 될 것인지, 또다시 ‘정답과 가까운 오답’으로 남을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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