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골 선교사촌은 고즈넉한 역사다

한남대 캠퍼스 안에 위치…‘ㄷ’자 형태 가옥에 선교사역 자료 보존
이자익사료관엔 신앙 거목 자취…창조과학전시관은 위대한 웅변


오정골 선교사촌에는 고즈넉한 기운이 감돈다. 바로 옆 한남대 캠퍼스에서는 젊은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요란하지만, 이곳만은 별세계인양 고요가 흐르고, 부스럭거리는 낙엽 소리까지도 선명히 귀에 들어올 지경이다.


오정동 선교사촌

한남대 정문에서 오정연못과 린튼기념공원을 지나 조그만 산책로를 따라가 보면 여러 채의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나란히 서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1950년대 중반에 조성해 사용했던 오정동 선교사촌이다.
선교사촌을 이루는 여섯 건물들 중 린턴하우스, 서머빌하우스, 크림하우스 등 세 채는 팔작기와기붕에 서양식 벽돌건물이 조화를 이룬 ‘ㄷ’자 형태의 가옥으로 현재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어있다.
이중 서머빌하우스에서는 현재 인돈학술원이 들어서 활발한 연구활동과 선교사역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세 건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고, 아직까지 숙소 연구소 전시실 등으로 활용도도 높다. 건축문화의 해였던 1999년에는 대전광역시의 ‘좋은 건물 4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서양식 벽난로를 비롯해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서적과 문구류 등은 물론, 숟가락 찻잔 같은 주방용품과 침구들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서양식 의식주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화체험관 역할까지도 감당하는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린턴하우스와 크림하우스의 보수작업이 끝나, 두 건물에 새로운 역사박물관과 세미나실 등이 조성되면 서머빌하우스는 더 정돈된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맞게 될 것이다. 타요한하우스, 로빈슨하우스, 무어하우스(영빈관) 등 다른 건물들도 아직까지 제각기 선교사 사택이나, 외국인유학생들의 생활관 등으로 활용되며 풍경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 오정동선교사촌에는 고풍스러운 정취가 흐른다.

한남대 중앙박물관

한남대를 빠져나오기 전에 들러볼 곳이 법과대학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중앙박물관이다. 이곳의 한 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선교자료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잘 짜인 구성과, 희소가치를 가진 수집품들로 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대전지역 장로교회들의 역사는 물론이고,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7인 선발대로부터 시작해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에 이르는 전라도 주요지역의 초창기 선교역사가 다양한 사진들과 유물들을 곁들여 생동감있게 소개되고 있다. 호남지역 어느 곳에도 이처럼 잘 구성된 역사박물관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 작은 전시관은 더욱 돋보인다.

▲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레이놀즈 선교사의 유품들.
레이놀즈(한국명 이눌서) 선교사가 한국 선교사역 40주년을 기념해 서대문교회에서 받은 은컵이라든가, 1932년 제작된 한국 선교지도, 1915년 전라노회 여전도회원들이 직접 수를 놓아 만든 우리나라 지도, 크레인 선교사 부인이 1920년대 당시 한국의 풍경과 풍속을 그린 회화작품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도 가득하다.
전시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수장고에 보관되어있는 군산 구암교회 출신의 예장통합 증경총회장 이창규 목사의 기증품들도 훌륭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물들은 특별전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일반에 소개된 바 있다.


대전신학대 이자익사료관

한남대와 지척에 있는 대전신학대학을 찾아가보면 또 하나의 역사자료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대전신학대 초대 교장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무려 3차례 역임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이자익 목사의 사료관이다.
2005년 학교 도서관 3층에 마련된 이 사료관은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자, 한국교회가 두고두고 후대에 자랑으로 전해줄 황금시대에 대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앞서 전북지역 답사편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자익 목사는 마부 출신으로 자신의 주인이던 조덕삼과 함께 복음을 듣고, 김제 금산교회 초창기를 일군 인물이다.
경상도 남해 출신으로, 전라도 김제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평양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큰 교회들의 청빙과 정부의 입각 요청마저도 사양하고 충청도 대전에서 묵묵히 사명의 불꽃을 태운 이자익 목사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자 참된 한국인이라 할 수 있겠다. 사역지를 불문하고 자신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그의 면면은 정계에서나 교계에서나 지역패권주의를 벗어버리지 못한 채, 권력욕에 눈먼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 장로교단 총회장을 3차례나 역임한 이자익 목사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대전신학대학 이자익 사료관.
사료관 입구에는 이자익 목사와 평생 사역의 동반자였던 조덕삼 장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고, 친필로 작성한 성경연구 노트와 편지, 그리고 신학교 교재 등이 여러 소장품들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신학교 정문 맞은편에 우뚝 선 오정교회 또한 그가 초대 당회장으로 섬긴 사연이 있다.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한국교회 위대한 거목의 자취를 좇는 소중한 여정이 될 것이다. 오정골 순례는 이렇게 마치고, 다음으로 대전이 간직한 또 다른 기독교 성지인 선화동으로 향하자.


선화동 루시모자원

선화동을 비롯한 대전시 중구에는 이름난 기독교사학인 호수돈여중고를 비롯해 오랜 역사와 탄탄한 규모를 간직한 교회들과 기독단체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할 곳이 근대문화유산 제169호로 지정된 성결교단 소유의 한 양옥집이다.
대전시 중구 선화동 362-22번지에 소재한 이 건물은 1930년대에 건축되어 당초 대전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삼각형과 사각형 지붕이 나란히 이어지고, 접대공간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태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다가 한국동란의 발발로 한반도에 가장을 잃은 수많은 엄마들과 자녀들이 발생하자, 이들을 위해 엘마 길버른 선교사를 비롯한 성결교 동양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해당 건물을 매입해 ‘루시모자원’이라는 이름의 복지시설을 설립한 것이다. 루시는 길버른 선교사의 아내 이름으로 전해진다.
모자원 식구들이 박영애 초대원장의 지도 아래 주일마다 예배하면서 생겨난 신앙공동체가 오늘날 대전성산교회로 자랐고, 루시모자원과 교회가 함께 성장하면서 지금은 이 일대에 여러 채의 교회건물과 복지시설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두 기관의 산실이 된 옛 건물은 현재 대전성산교회 원로목사가 거주하는 사택으로 지금도 훌륭히 구실을 하는 중이다.
루시모자원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짧은 몇 줄의 글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사고무친의 불쌍한 영혼들을 거두어,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인재로 키운 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린 한없는 사랑을 순전한 이웃사랑으로 갚은 선배 신앙인들의 공로가 있었다. 대전의 순례는 그렇게 가슴 따뜻한 시간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더 둘러봐야할 대전의 신앙유산들


대전기독교연합봉사관

문화동 서대전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대전기독교연합봉사관은 오랫동안 지역교계를 상징하는 건물로 역할을 감당해왔다. 미국 북장로교선교사인 에드워드 아담스(한국명 안두화)와 동생인 조지 아담스(한국명 안두조)가 해방을 맞은 한국사회를 재건하고자 감리교선교회, 캐나다선교회, 구세군선교회 등과 힘을 모아 1949년 대전 삼성동에서 기독교연합봉사회를 조직한 것이 효시가 됐다. 처음에는 결핵퇴치와 농민계몽운동으로 시작해, 1960년대 새마을운동의 기초를 놓기도 했다. 이후 고아원 어린이집 여성쉼터 청소년상담소 재가복지센터 등을 잇달아 개원하며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필요에 부응해왔다.


대전 창조과학전시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대덕연구단지에 개관했던 대전 창조과학전시관은 2002년부터 8년간의 카이스트 시대를 거쳐, 현재는 대전시 용문동에 소재한 대전순복음교회 세계선교센터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서 뉴턴, 패러데이, 가우스, 파스퇴르 등 성경을 믿은 위대한 과학자들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우주와 지구, 노아의 방주, 생명의 기원 등에 대한 창조론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설문과 화석 등이 전시되어있다. 지구온난화 등을 경고하는 환경관과, 영상물을 감상하고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특별관도 마련되어있다.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학자들조차 진화론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이곤 하는 시대에, 이 전시관은 ‘그래도 성경이 옳다’며 꿋꿋이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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