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6)] 전북 내륙
[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6)] 전북 내륙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1.10.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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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헌신의 발자취는 강력한 웅변

‘거리의 성자’ 방애인· ‘믿음의 어머니’ 고인애 기념물, 숭고한 나눔 일깨워
기독문화재 발굴 동력된 김제 금산교회 등 자랑스런 신앙유산 빛을 내다


누구나 빚을 지고 살아간다. 특히나 복음의 빛으로 인도받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떨칠 수 없는 사랑의 부채가 있다. 오늘의 여행은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갈 우리들이 고마운 은인들을 찾아가는 순례이다.

▲ ① 한국교회 문화유산 발굴 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김제 금산교회 기역자 예배당.② 고창 오산교회 부설 학교로 출발해 민족교육의 산실로 성장한 고창고등학교 옛 강당.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③ 새로운 형태의 농촌교회와 신앙공동체로 주목받고 있는 진안 배넘실마을.

방애인 비석과 묘소

완주군 비봉면의 한 무덤가에서 오늘의 여행을 시작하자. 전주서문교회 안식원의 너른 묘역 한 가운데, ‘방애인’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빛바랜 비석과 조그마한 봉분 하나를 찾을 수 있다. 황해도 황주 출신인 그녀는 개성 호수돈여고를 졸업한 후,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전주기전여고 교사로 부임한다. 전주YWCA 초창기 멤버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녀는 생전 두 벌 옷을 지니지 않고,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특히 부모를 잃은 아이들, 모두가 외면하는 한센병 환자들, 물난리로 가산을 모두 잃고 길가에 나앉은 이재민들을 자기 몸처럼 돌보던 그녀를 사람들은 ‘거리의 성자’로 불렀다. 한편으로는 여성계몽운동을 벌이며 축첩과 음주 등 해로운 풍속들을 몰아내는데 앞장서, 어린 그녀를 스승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인 생애를 살다가 스물네 살 아까운 나이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전주의 기독여성들은 지금도 그녀를 기억하며, 각종 기념사업으로 문화공연으로 그의 정신을 계승코자 노력한다. 그녀의 초라한 무덤이 어느 왕조의 고분보다 숭고한 까닭이 거기 있다.


고인애 기념관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완주군 상관면으로 달려가 보자. 오늘날 종합대학으로 우뚝 성장한 한일장신대의 출발은 1920년대 전주 다가산 기슭에 세워진 한예정여성성경학교, 그리고 그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한일여자신학교였다. 그런데 18년 전 한일장신대가 캠퍼스를 신축 이전하면서 고스란히 옮겨온 건축물을 찾을 수 있다.
바로 1928년에 한일여자신학교 본관으로 건축된 2층짜리 건물이 고인애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강연과 사회봉사 업무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코라 웨이랜드가 본명인 한국명 고인애씨는 미국남장로교 파송선교사로 27년 동안 한국에서 사역한 인물이다.
특히 한국교회 여성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큰 역할을 감당했고,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한일여자신학교를 재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오늘날의 한일장신대가 존재하게 한 은인이기도 하다. 제2의 학교 창설자로, 믿음의 어머니로 아직도 기억되는 그녀의 흔적을 기념관 뿐 아니라 캠퍼스 여기저기에 세워진 동상과 기념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인애기념관 앞에 세워진 서서평선교사의 기념비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한일여자신학교는 전주 한예정여성성경학교와 광주 이일성경학교가 합병하여 설립된 학교이며, 이제는 이름만 남은 이일성경학교를 설립한 인물이 바로 독일 태생의 간호사인 서서평 선교사였다. 군산 구암병원, 서울 세브란스병원, 광주 제중원(현 기독병원) 등을 두루 거치며, 한국간호학회를 창립하고 여러 권의 간호학교과서를 내는 등 우리나라의 간호학 태동기에 초석을 다진 그녀는 지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시신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기도 했고, 현재 유해가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묻혀있다. 내년이면 그녀의 내한 100주년을 맞고, 이를 기념해 광주 기독간호대학에는 신축 기숙사에 그녀를 기념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김제 금산교회

이제 발길을 서쪽으로 돌려본다. 모악산자락을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다보면 김제 금산교회를 만나게 된다. 남녀가 유별했던 시대, 유교문화와 기독교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해 고안했던 ‘ㄱ’자 예배당이 남아있는 교회. 그 건물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기독교문화재를 발굴 조명하는 붐을 일으킨 계기로 작용했던 그 유명한 교회이다.
낡고 보잘것 없었던 옛 예배당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복원공사를 거쳐 산뜻하게 단장이 되었고 덩달아 오래된 풍금이며, 종탑, 당회록, 심지어 옛 우물터까지 진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남자석과 여자석을 구분하는 휘장까지 설치해, 그 옛날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재현한 이곳에서 우리는 이자익과 조덕삼이라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마을의 부호였던 조덕삼과 그의 마부였던 이자익은 함께 신앙을 받아들이며,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형제애를 키워갔다. 그 절정은 이자익이 조덕삼을 제치고 금산교회 초대 장로로 선출된 순간이었다. 어찌 보면 하극상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충격과 자존심의 상처를 누르고 기꺼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훗날 이자익이 한국장로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한 조덕삼의 너른 가슴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그들에게 순전한 신앙, 겸손의 미덕, 섬김과 배려를 가르쳤던 인물이 테이트 선교사이다. 1892년 호남선교 개척의 7인선발대 중 한 사람으로 한국 땅을 찾은 그는 전주를 시작으로, 익산 김제 정읍 남원 등 전북 내륙 일대를 누비며 엄청난 선교의 열매를 거둔 인물이다. 그가 말을 타고 찾아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 믿음의 가문을 세운 호남인들의 숫자는 조덕삼 이자익을 비롯해 1500명을 헤아린다.
한 마디로 호남선교의 최대 공로자라 할 수 있는 그의 힘을 빌어, 김제 금산교회도 이 땅에 등장해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테이트 선교사는 훗날 심장병으로 33년간의 한국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한국선교에 동원하는 등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바쳤다.

④ 한일장신대 교정에 자리한 고인애기념관. 전주시 중화산동에서 완주군 상관면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며 옛 건물을 고스란히 옮겨왔다.⑤ 근대화 시기에 기독교여성운동과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방애인 선생의 묘소.
고창 오산교회

이제 마지막 여행지를 향해 더 멀리 남쪽으로 달려가 보자.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산이 지척에 있고, 서해바다의 짜릿한 내음이 바람결에 아련히 전해지는 고창군 부안면 소재지에 오산교회가 있다. 내년이면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전통 깊은 교회의 설립자는 뜻밖에도 일본인이다.
마쓰도미 장로. 그는 당초 청일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일본군 장교였다. 그러나 그는 양반들에 의해, 외세에 의해 압제당하는 이 땅의 백성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 때문에 사로잡힌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조선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고창 땅에 사과농장을 세우며 정착한다.
식민지 백성들의 설움을 달래고자 십자가 사랑으로 다가서는 오산교회를 설립했고, 어린 아이들을 미래의 희망을 키우기 위해 오산학교의 문을 열었다. 그의 동역자로 나선 이들이 김영구 윤치병 양태승 같은 인물들이었고, 이들은 훗날 오산교회와 오산학교를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리고 마쓰도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법도 없이, 교회와 학교를 한국인들의 손에 돌려주며 자신의 순전한 한국사랑을 입증한다.
오산학교는 훗날 고창읍 소재지로 옮겨가 고창고등보통학교로, 다시 고창고등학교로 성장한다. 일제하와 6·25를 거치는 격랑기에 민족교육의 산실로, 한글교육의 보루로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이 명문학교가 한 일본인의 나눔과 베품을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퍽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신앙공동체로 성장하는 농촌마을들

호남지역에는 유난히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마을들이 많다. 급격한 이농현상과 경제 붕괴로 위기를 맞은 농촌을 지키고자 교회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앙공동체, 생활공동체가 결속된 것이다.
진안군 상전면의 배넘실교회, 장수군 장수읍의 대성교회, 완주군 이서면의 들녘교회, 장성군 진원면의 한마음공동체 등이 대표적인 교회들이다. 각자 출발은 달랐고, 사역의 성격들도 서로 달랐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지친 영혼들을 품고자하는 마음만은 한결 같다. 그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새로운 생활문화들 또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북 내륙의 또다른 볼거리들

▲전일봉 장로 동상
무주군 무주읍 한복판에 자리잡은 한풍루공원에는 전북 동부 산악지대의 유명한 전도인이자 민족지도자였던 전일봉 장로의 기념상이 세워져있다. 여올교회 초대 장로이자 무주와 무풍 일대에서 활약한 전도인으로 사역한 그는 만세운동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뻗어가던 기미년 4월 1일 무주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그의 애국신앙을 기리기 위해 여올교회에서는 매년 추모예배가 열리며, 무주군은 2001년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

▲정읍 두암교회 순교자묘역
정읍시 소성면에 소재한 두암교회에는 예배당 바로 곁에 순교비, 순교탑과 함께 6·25 당시 순교한 성도들이 합장된 합동묘소가 마련되어있다. 이 당시 학살당한 4가족 23명의 비극은 훗날 성결교단 총회장으로 성장한 김용은 김용칠 형제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1966년 김태곤 전도사에 의해 교회가 재건되면서, 가매장했던 시신들을 다시 수습해 정식으로 순교자묘역이 조성되었다. 순교기념탑은 1994년 기성교단 순교자기념사업회에서 건립했다.

▲완주 신월교회 순교자기념비
6·25 전쟁 당시 희생된 신월교회 박용순 집사와 봉상교회 김성원 목사 등 완주군 일대 7개 교회, 20여명의 성도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이다. 1999년 6월에 신월리 마을 안쪽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많은 이들이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마을 바깥 도로변으로 2007년 이전하며 전체적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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