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농대 은퇴, 40년 농촌선교 동반자…농업과학사박물관 건립하기도 상생의 관점서 농촌공동체 희망 발견해야…농촌교회 네트워크화에 진력


두 노 (老) 교수는 농담 끝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소년의 그것처럼 맑고 투명했다. 세월을 잊은 듯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한국의 농촌 현실로 되돌아왔다. 농촌 공동체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하는 두 학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눈빛도 진지해졌다. 잔잔한 어투 속에 젊은이 못지 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런 두 노 교수에게서 뭔지 모를 ‘향기’가 감지되었다. 짧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연륜의 깊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연륜의 향기가 그렇게 공간 속에 짙어져가고 있었다.

■ 신앙의 형제
정하우(65·서울대농대명예교수), 정지웅(65·서울대농대명예교수) 교수, 두 사람은 올해 2월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명예교수도 나란이 됐다. 정하우 교수는 농업공학(관개·배수)자이고, 정지웅 교수는 농촌사회교육·개발 학자이다. 전공은 서로 달랐지만, 두 사람은 서울 농대 재직 시절 내내 함께 활동했다. 처음으로 농대 신우회를 조직해 교직원들의 신앙생활을 주도하고, 농촌선교협의회를 만들어 농촌선교를 시도하기도 했다.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농촌계획학회를 설립해 농촌의 개발과 미래를 준비했고, 정부와 함께 산촌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농업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단돈 몇 백만원의 예산으로 농업과학사박물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많은 프로젝트 이면에는 40여년을 서로 돕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함께 걸어 온 두 교수의 신뢰와 믿음, 우정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이들의 긴 궤적은 같은 학문적 방향과 신앙적 목표를 가진 사람들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두 사람이 처음 안 것은 60년 중반이지만, 본격적인 교분을 튼 것은 70년초. 정하우 교수는 대학원생으로, 정지웅 교수는 전임강사로 만났다. 생일은 한달 정도 정하우 교수가 빨랐지만, 시각장애(약시)로 군면제를 받았던 정지웅 교수는 일찌감치 학업을 마치고 전임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며 신앙의 동지로 발전한다. 신심이 깊었던 정하우 교수는 참을성 있고 끈기있게 정지웅 교수를 신앙의 길로 이끌었고, 정지웅 교수는 40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두 교수는 신앙의 동지로, 한국 농촌 발전을 위한 학문 동반자로 긴 여정을 함께 걷는다.
“여러가지 활동들을 함께 했습니다. 로고스교수선교회에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고, 농촌선교협의회, 농대신우회를 조직하기도 했지요. 농업과학사박물관을 만들었을 때는 초대 관장과 2대 관장을 나란히 하기도 했습니다.”

■ 에덴동산을 모델로 한 농촌
정하우 교수는 농업공학자이고, 정지웅 교수는 농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이다. 이런 두 교수가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농어촌 계획부문(Planning & Design). 그래서 이들은 농공과 조경, 사회과학을 함께 다루는 농촌계획학회를 지난 94년 만들었다. 이런 학회의 활동은 물론 위기에 처한 한국 농촌의 발전과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두 교수의 학문적 활동은 다른 학자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을 갖고 있었다. 농촌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삶의 목표는 에덴동산의 재창조라고 봅니다. 농촌계획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에덴동산의 재창조, 혹은 복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모델과 가장 비슷한 것이 농촌인데, 이러한 농촌을 어떻게 계획하고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그 기본적인 바탕은 에덴이란 렌즈로 농촌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세상적 시각이 아니라, 에덴의 렌즈, 성령의 렌즈로 농촌을 바라봐야 이상적인 형태의 농촌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이런 두 사람의 시각은 신앙적인 측면을 한편으로 밀쳐놓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상생론’(相生論)이다. 농촌없이 도시만 전진할 수 없고, 도시 없이 농촌만 존재할 수도 없다. 두 교수는 현재의 도시-농촌간 문제는 너무 앞서가고 있는 도시와 지나치게 뒤쳐진 농촌이라는 깊은 괴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촌에서도 도시를 시장으로만 보아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도시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함께 간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서로간의 상생이 가능해집니다. 바로 이런 관점이 기독 농민들이 추구해야 할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민도 살고 도시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농촌 플래닝이고 디자인입니다.”

■ 교회의 역할
이런 이야기들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인식의 뿌리는 어찌보면 경제적인 측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두 교수는 이런 기본적인 틀 안에서 그동안 여러 농촌 공동체를 다니며 다양한 실험들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두 교수가 중시하는 것은 농촌 지역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 두 사람은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는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독일식 모델을 제시한다. 실제로 이들 국가에서는 교회가 해당 지역의 개발을 주도해가는 실질적인 주체이다. 이런 모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그 지역사회에서 실제적인 브레인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아직 한국 교회는 이런 부분에 별 관심이 없다. 그것이 두 사람의 안타까움이고 숙제이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목회자가 농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이를 바탕으로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한국 교회가 이런 영역에 관심이 없습니다. 총회가 이런 면에도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대안을 수립해주길 기대합니다.”

■ 바쁜 은퇴 후의 삶
이미 은퇴를 했지만, 두 교수는 여전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정지웅 교수는 내년 한국에서 열릴 국제농촌교회협의회 회의 준비와 각국의 농촌 교회들과 한국의 농촌 교회를 네트워크화 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하우 교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어디든 간다”는 것의 기본적인 중심이지만, 일단은 ‘장수마을’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 장수마을은 도시민과 농촌 주민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프로젝트로,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실버타운과는 다른 개념이다. 즉, 자본을 갖고 있는 도시민들이 일정 금액을 투자해 농촌을 개발하고 농어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종의 생활 공동체이다. 정하우 교수는 이런 일에 한국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한 평생을 한국 농촌의 연구와 개발에 바쳐왔던 두 노 교수는 이제 삶의 한 장(章)을 접고 새로운 장을 준비하고 있다. 신앙의 형제로, 학문의 동반자로, 그리고 인생의 친구로 함께 걸어왔던 두 교수는 이제 나란히 서서 봄빛이 완연한 농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이 따스한 햇살 아래 아련히 녹아들고 있었다.
(사진설명: 정하우(왼쪽)·정지웅 두 명예교수는 신앙 안에서의 형제로 학문과 실천에서는 동반자로 우리나라 농촌 발전을 위해 행복한 동행을 계속해왔다. / 권남덕 기자 photo@kidok.co.kr)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