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노숙인 청년 소외된 10년의 삶 카메라 일기에 담아 “가난한 사람들은 천국의 야생화…상실 속 숨은 진실 일깨워”


#1.
서늘한 깨달음이 가슴을 스친다.
한 인간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 아무래도 그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의 내면 속에 묻어있는 웃음과 눈물, 무료함과 긴장, 안타까움과 흐려져가는 기억들…
그저 연속되는 삶의 순간들이지만, 특별할 것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런 단편들을 모아 죽 늘여놓고 들여다보면, 알 수 없는 습기가 발바닥에서부터 서서히 고여온다.
진실은 때론 눈물겹다. 사람의 진실이 그렇다. 그런 습기와 눈물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사람은 사람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그래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노래’한다. 가슴에서 번지는 노래는 파문이 되어 몸으로, 글로, 사진이 되어 나타난다.
‘문화적 형태의 텍스트’를 ‘읽는’ 일, 그것은 ‘듣는’ 일이고 ‘공감’하는 일이다.

#2.
1998년 겨울, 두 청년이 만났다.
하나는 사진을 찍고, 하나는 노숙자다. 그런 둘이 우연히 만나 하나는 ‘파인더’가 되고 하나는 ‘피사체’가 되었다. 파인더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피사체는 정신지체 2급, 앵벌이, 노숙자 생활 10년의 소외된 삶이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는 그렇게 보고, 보여지다 친구 아닌 친구가 되었다.
둘이 만나 만들어 내는 풍경의 몇 컷은 이렇게 그려진다.
“난 두한이에 대해 아는 것이 몇가지 없었습니다. 조금 어눌해 보이는 말투의 노숙자 출신이라는 정도. 두한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두한이의 고향과도 같은 지하철 잠실역으로 동행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친구들을 소개시켜준다고 합니다. 잠실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아이가 돈을 구걸했습니다. 앵벌이입니다. ‘저도 예전에 앵벌이였어요’.”
“설렁탕 국물의 따뜻한 기운데 두한이 몸이 조금 녹은 듯합니다. 잠깐 손 모아 기도하더니 정신없이 설렁탕에 얼굴을 파묻어버립니다. ‘너 배 많이 고팠구나?’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입니다. 조금은 밉살스럽고 능청스럽지만 귀여운 두한이. 며칠 만에 많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느새 설렁탕 두 그릇을 비웠습니다.”

#3.
이요셉(28.’버드나무’편집장)은 그렇게 만난 김두한(26.본명 김종술)에 관한 사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일기는 이요셉의 사이트 ‘러브앤포토’(lovenphoto.com)와 ‘버드나무’(birdtree.net)에 올려졌고, 마침내는 단행본(<요뗍이 형, 같이 가>(규장))으로까지 묶어져 나왔다.
일기 속에 드러나는, 두한을 보는 요셉의 시선은 ‘사회적’이지 않다. 노숙자라는, 앵벌이라는, 정신지체 2급이라는 현상에 대해 ‘사회 구조적 모순’이나 ‘경제적 왜곡’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요셉은 그저 두한이란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뿐이다.
“소외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한이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의 모난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깨닫는 계기를 두한이가 열어주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소외된 사람들이 천국의 야생화라고 생각합니다.”
눈빛이 맑은 한 청년의 시선은 그렇게 인간의 진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그리 특별한 것도, 의미깊을 것도 없는 어느 동행의 기록이지만, 요셉의 사진이 자꾸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아마도 ‘진실의 힘’일 것이다. 자신의 주변을 외면하지 않는 것,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것, 작지만 큰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상실한 그 무엇인가를 그의 일기 속에서 발견한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며 잃어버렸던 우리 안의 그 무엇, 망각의 안개 속으로 어느새 묻혀져버렸던 우리 안의 그 무엇, 바로 ‘순수의 눈’…
김지홍 기자 atmark@kid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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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 감독(KBS인간극장.<팔복-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자)이 말하는 요셉과 두한
두한이를 안 것은 1988년 겨울이었다. 잠실 지하도에서 하늘이란 노숙자를 촬영하다가 액션스타가 되고 싶어 ‘김두한’이란 예명을 스스로 붙였다는 이 앵벌이 녀석을 만난 것이다.
내가 만든 ‘친구와 하모니카’라는 다큐멘터리에 주인공 겸 조수가 되어 춥고 긴 겨울 여행을 같이하기도 했다. 자기를 위해주고 좋아해주면 늘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는 녀석. 헤헤거리며 웃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버드나무’라는 사이트를 만들며 인연을 맺은 요셉이를 두한이는 무척 따랐다. 요셉이의 사진으로 두한이 이야기는 나의 다큐멘터리와 다른 따스함, 냄새, 유머가 스며들게 되었다.
나는 요셉이의 작업이 무척 좋았다. 여러 번의 방황, 다시 돌아옴 그 모든 과정에 두한이는 늘 요셉이와 함께했다. 폼잡지 않고 작위보다는 무위의 순수한 풍경으로 인간을 매만진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 작업은 두한이보다 오히려 요셉이를 성숙시켰고 순진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던 경상도 촌놈 요셉이를 차라리 세상에 눈을 뜨게 했다.
이 말썽꾸러기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보았고 기도해야 했고 한 영혼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가 절감해야 했다.
이 소박한 여정은 요셉이라는 작은 사진가가 두한이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생래적으로 가야 하는 우리에게 주는 두한이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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