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늦은 나이에 소명을 받고 신학생이 된 아버지.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던 내 어린 시절은 아버지 부재였다. 물론 아버지 대신 손자를 맡아 양육했던 조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의 돌봄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법과 무게는 다르고 달라서 마음의 한 켠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짙었다.

철없던 그 시절에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불쑥불쑥 생길 때면, 뒷동산에 올라 먼 산야를 바라보곤 했다. 분명 아버지가 계셨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그리움에서 나온 나 나름의 갈망의 애잔한 몸부림이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으로, 무뚝뚝하지만 속내의 잔정이 깊은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대할 때마다 아들이 필요할 때 적절한 사랑을 베풀지 못한 아쉬움에 미안해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부재 상황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다름 아닌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의 추억은 하얀 백지의 여백으로 가득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날, 아버지와 함께 겨울채비를 위해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간 날을 잊을 수 없다. 열심히 땔감을 쟁기는 아버지 옆에서 언제 밥 먹고, 언제 집에 가느냐고 성가시게 한 모습이 아련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단물이 퐁퐁 솟아나는 옹달샘 바위틈에 앉아 냉기에 싸늘히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으면서 서로 웃던 그때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뭄에 단비 내리듯 오늘의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어린 날의 유일하다 싶은 풍경비다. 아버지와 단둘이 간 그날의 소풍. 그날의 각별했던 기억의 강인함이 잔상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걸 보면 참 좋았던 모양이다.

작디작은 아이는 이제 중년이 되어, 아버지의 잔상을 지닌 채 아버지의 흔적을 그림자처럼 따라가고 있다. 그 그림자는 아버지의 뒤태며, 나를 잇은 두 아들의 앞태다. 이렇게 두 태 사이의 그림자인 나는, 중간 그림자인 상태에서 나를 따르는 그림자인 아들의 입장에 회상해보면 한 때의 원망함이 내게도 있지 않을까 심려해 본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삶의 근원이요 뿌리다. 더구나 믿음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신앙의 이음줄이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언덕은 아들이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가슴이 아닐까!

그 가슴팍에서 신앙의 역사를 함께 기록해 가는 함께함. 내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간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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