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대천항에서 25km, 배를 타면 50분이 걸리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재 녹도는 면적은 0.92㎢에, 2018년 현재 93가구 182명이 살아가는 섬이다. ‘녹도’(鹿島)라는 이름은 섬의 생김새가 사슴을 닮은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녹도에서는 과거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땅속에 묻지 않고 일정 시간 동안 땅 위에 묻는 초분(草墳)이 행해졌지만,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貝塚)가 섬에서 발견되었고, 석기·토기 등도 출토되었다.

국내 유일하게 금주령이 내려진 섬이기도 하다. 금주령은 50여 년 전 동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법이다. 올해 83세인 이규인 씨는 이렇게 말한다. “50년 전 제가 녹도 청년회장이었어요. 그때 어업이 성행해 경기가 좋아서 여기에 술집이 많았지요. 순전히 밀주였는데 술에 취하여 싸움질을 하고, 노상방뇨도 하고, 노인들에게 대드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을 청장년들에게 녹도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네 주민들이 다 술을 끊은 것은 아니고, 동네 애경사 등 꼭 술이 필요할 때면 대천에서 사온다고 한다. 50년 전에 술파는 집은 사라졌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다음, 몰래 술을 파는 행위가 네 집에서 적발돼 2차 금주령을 실시했다. 이렇게 녹도가 규율과 교육열 등이 강한 것은 주민들의 자치 수준이 높은 연유이다.

서해어장의 전진기지였던 녹도는 한때 충남에서 외연도와 함께 크게 번성한 섬이었다. 녹도 주변 바다에는 제주 난류가 북상하면서 봄에는 까나리와 새우, 여름에는 멸치잡이 어장이 성행했다. 주위에 무인도가 많아 전복 해삼 소라 등 각종 어패류들이 많이 잡혀서, 공판장이 자리했을 정도라고 한다.

현재는 안강망 어선 6척이 멸치조업을 한다. 바다에서 잡는 즉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멸치는 배에서 삶는다. 삶은 멸치가 소량일 때는 녹도에 가서 건조하고, 양이 많을 때는 대천 어항으로 달려가서 건조한다. 예전에는 녹도에서 잡힌 조기가 임금님 상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300여 척의 고깃배가 왕래하고, 섬 인구가 124가구 7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뱃사람들이 돈 자루를 메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유했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녹도교회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언덕 밑으로 마을이 오밀조밀하고 아담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밤에 불이 켜지면 바다 쪽 동네가 마치 동화 속 그림처럼 아담하게 연출된다. 1997년 녹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사역자 두 분이 계셨는데 모두 여자 분이었다. 1980년대에 부임하여 10년 넘게 근무 중이라고 했다.

봄에 까나리가 많이 나오는데,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젓갈로 담아서 육지에 판매하도록 두 분이 연결해주었다. 그 결과, 마을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한겨울을 날 수 있도록 일 년에 한 번씩 연탄배가 들어오는데, 1200장의 연탄을 교회까지 올리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도 했다. 두 분은 이후 이웃 섬 장고도교회에서 시무하다 최근 은퇴했다.

섬은 예나 지금이나 교통이 불편하다. 오직 선박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안개나 풍랑, 야간 운항 등 문제가 생기면 종종 육지와 단절된다. 하지만 반대로 청정 자연환경에는 원시적인 느낌이 살아있고, 해산물도 즐비하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와 갯벌 해수욕장이 일품이다.

미래 자원인 섬들은 이제 깨어나고 있다. 2019년 8월 8일 섬의 날이 제정되기도 했다. 뒤늦은 감도 있지만, 앞으로 활발한 연구와 답사 등을 통하여 아름다운 섬 문화가 널리 전파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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