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여수노회·목포과학대 섬해양선임연구원)

이 땅에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인 고대도는 충남 보령시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0.92㎢, 해안선 길이 4.3㎞, 115세대 227명이 살아간다. 생활권인 보령 대천항에서 16km, 태안반도 남쪽의 안면도 영목항에서 약 3㎞ 떨어진 섬이다. 아주 예로부터 마을이 형성된 섬이어서 집터가 많아 ‘고대도’(古代島) 혹은 ‘고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학교가 나타난다. 청룡초등학교 고대분교, 건물이 초등학교 분위기에 맞도록 알록달록 도색되어 있다. 이 학교에는 여학생 단 한 명이 다니고 있다. 숙박업소는 물론, 식당이나 가게 하나 없던 이 섬에 최근 천막으로 된 슈퍼가 생긴 것이 눈에 띄는 변화이다.

분교를 지나면 현대화된 특이한 건물이 보인다. 골목길을 사이로 두고 분교와 맞대어 있는 이 건물은 십자가만 아니라면 무슨 시설물처럼 보인다. 바로 고대도교회당이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한 쪽은 하얀 바탕에 붉은 벽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분홍색 바탕으로 덧칠해진 이 예배당은 섬을 통틀어 가장 멋진 건물이다.

사실 고대도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섬이다. 조선시대에 배를 타고 우리 땅에 들어온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이 외딴 섬에 방문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도교회 예배당은 바로 이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리는 기념교회당이다. 1층은 예배실, 2층은 귀츨라프 선교사에 관한 자료실과 숙소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시대인 1832년 우리 땅을 찾아와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했던 최초의 이양선 이름은 ‘로드 암허스트호’였다. 당시 이 배에는 중국어 통역관 겸 의사로 29세의 귀츨라프 선교사가 탑승하고 있었다.

그해 7월 25일 고대도에 도착한 후, 귀츨라프는 홍주목사 이민회를 만나 조선 왕에게 정식으로 보내는 통상 청원서와 한문성경을 비롯한 26종의 책자, 그 밖에도 망원경 등 많은 선물을 전달했다. 하지만 순조 임금은 그때까지 전례가 없던 서양과의 통상을 허락하지 않았고, 고대도에서 20일 동안 정박해있던 암허스트호는 섬을 떠나야 했다.

한편 섬에 머무는 동안 귀츨라프는 주민들에게 한문성경과 의약품 등을 나누어주었고, 가난하여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았던 섬을 위해 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과 포도주 제조법까지 전파했다고 한다. 특히 주민들로부터 한글을 배워서 주기도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가르쳐주는가 하면, 자신이 익힌 한글자모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훗날 귀츨라프는 동아시아 항해기를 책으로 남겼는데, 이는 조선이 서구세계에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 홍콩과 마카오 등을 오가며 선교사역을 계속하던 귀츨라프는 1851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48세였다. 시신은 홍콩 해피벨리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으며, 홍콩 시내에는 귀츨라프 거리가 조성되었다.

귀츨라프가 다녀간 지 150년이 지난 1982년에 비로소 고대도교회가 설립됐다. 예장합신 총회는 2001년에 열린 제86회 총회에서 고대도교회를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교회로 지정했고, 2005년 기념예배당 헌당식을 가졌다. 2013년에는 독일에서 유학하며 귀츨라프 관련 자료들을 입수한 오현기 교수를 초청해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2014년 3월 1일애는 서울에서 귀츨라프학회가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7월 25일을 ‘귀츨라프의 날’로 지정해 국제학술세미나 및 음악회 등 기념행사를 고대도에서 열었다.

귀츨라프 이야기와 함께,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고대도로 찾아가려면 대천항에서 하루 3번 운항하는 페리호를 이용하면 된다. 하루면 충분히 섬을 돌아보고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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