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정관모 교수, 악성 육종 투병 중에도 자전 문집 〈마이 오벨리스크〉 등 출간

<Jesus Christ> 조각상 아래 위치한 카타콤을 상징하는 문들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실내전시장에는 정관모 교수의 대표작인 <기념비적인 윤목> 시리즈와 <코라이 환타지>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Jesus Christ> 조각상 아래 위치한 카타콤을 상징하는 문들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실내전시장에는 정관모 교수의 대표작인 <기념비적인 윤목> 시리즈와 <코라이 환타지>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삶을 허락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오른손잡이 조각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오른쪽 팔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작렬해 병원을 찾았던 정관모 교수(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의사에게서 ‘악성 육종’이라는 판명을 받았다. “무망(無妄)하다”는 의사의 진단에 수년간 운영하던 C 아트 뮤지엄도 급하게 처분하고 서둘러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성공한 듯 보였던 수술은 악성 육종의 재발로 재수술로 이어졌고, 항암치료의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정신이 혼미했다가 잠깐씩 돌아오는 무서운 시간이 흘러갔다. 언제 하나님께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그 시간에 정관모 교수는 “내 모든 삶을 주관하신 이가, 이제 조각이나 그림 등 일체의 창작생활이 불가능해진 내게 허락하신 마지막 미션이 이것인가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자전 문집 <My Obelisk> <너그러운 시각>(미술문화,2021)을 병상에서 집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악성 육종으로 조각가의 삶을 내려놓아야 했던 정관모 교수는 병상에서 &lt;My Obelisk&gt;와 &lt;너그러운 시각&gt;을 집필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두 권에 책에 담았다.
악성 육종으로 조각가의 삶을 내려놓아야 했던 정관모 교수는 병상에서 &lt;My Obelisk&gt;와 &lt;너그러운 시각&gt;을 집필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두 권에 책에 담았다.

삶의 궁극은 ‘십자가’

‘My Obelisk’는 나의 기념비, 내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내 인생의 지표, 내 삶의 궁극을 뜻한다. 1973년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성신여대 부교수로 부임하던 시절, 어느 주일 집 근처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말씀에 반해 섬기게 된 영암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정 교수는 기독교인이자, 조각가, 교육가로서의 삶의 경험을 통해 ‘내 삶의 지표는 십자가’임을 절감하게 됐다. 이후 그의 작품 <My Obelisk>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 기독교인의 삶의 지표이자 하나님을 닮으려는 이들의 믿음의 표상인 ‘십자가’가 다양하게 변주되어 담기게 됐다.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저는 언제나 일정한 규제 속에서의 자유를 느낄 때 참 삶의 참 행복을 느껴왔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규제 아래서 자유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미완의 삶, 그리고 말씀(The Words)

2002년 6월 정 교수는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십자가 형태연구’라는 주제를 다시 꺼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2007년 장로로 시무하는 영암교회에 ‘New Icon-십자가 평면연구’라는 큰 주제 아래 부활, 실낙원, 요나 이야기, 모세 이야기, 노아의 방주, 성삼위와 십자가, 천지창조, 화해의 십자가, 몰타의 십자가, 평화십자가, 메시지, 십자가 모음 등 그림들을 교회 현관 입구 양쪽 계단 벽을 장식했다.

그리고 말씀의 상징적 화면이나 형태구성보다 ‘성경 말씀 자체’를 주 형상으로 세운 일러스트레이션의 개념의 그림 <The Words> 시리즈를 그려왔고, 이러한 시도는 지난해 2020년 4월 코로나19 의료진들의 에스더와 같은 희생정신에 감사를 표한 작품까지 이어졌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말해서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미완의 삶’이었습니다. ‘숨 가쁜 삶’이었다고 한다면 나를 아는 이들이 공감해 줄 수 있을까요.”

조각가로, 예술가로, 행정가로, 경영가로, 한 가족의 가장이자 남편으로 아버지로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이지만, 정관모 교수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관모 교수는 오는 11월 10일 주간으로 예정된 생의 마지막 전람회를 위해 오늘도 작품 구상과 창작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몸이 어제오늘 또 다릅니다. 무망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 남아있기에 그분이 주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C 아트 뮤지엄, 기도의 삶 지향하다

정관모 교수는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야베스의 기도가 자신의 기도가 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2006년 경기도 양평에 C 아트 뮤지엄을 개관했다.

C 아트 뮤지엄 전경. 정관모 교수에게 삶의 지표인 ‘십자가’의 형상은 담은 조각 <My Obelisk> 작품이 세워져 있다.
C 아트 뮤지엄 전경. 정관모 교수에게 삶의 지표인 ‘십자가’의 형상은 담은 조각 <My Obelisk> 작품이 세워져 있다.

C 아트 뮤지엄의 C는 현대적(Contem-porary)이고, 창의적(Creative)이며, 기독교정신(Christianity)으로 건립한 현대미술관이다. 5만여 평의 부지 위에 정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조각들로 감사함과 은혜를 표했다. 

미술관 입구 뜰에 세워진 <성령의 열매>라는 작품은 예수를 믿어 거듭난 삶을 사는 이들이 추구하는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절제가 쓰여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승리하는 삶에 이름을 표현하고 있다.

C 아트 뮤지엄을 대표하는 작품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가 임종할 때 고통이 지나간 후 평온한 표정을 담은 22m 높이의 예수 얼굴 조각상.
C 아트 뮤지엄을 대표하는 작품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가 임종할 때 고통이 지나간 후 평온한 표정을 담은 22m 높이의 예수 얼굴 조각상.

언덕을 오르면 <Jesus Christ>라는 22m 높이의 예수 얼굴 조각상이 나타난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 마지막 단계에서 ‘다 이루었다. 내 영혼을 주님께 맡긴다’라고 하시고 임종할 때 고통이 지나간 평온한 표정을 담은 예수의 얼굴 조각상 아래는 카타콤을 상징하는 문들이 존재하는데, 그 문들이 뮤지엄의 입구이다.

그리고 야외 작품으로는 <Amen>이 있다. 20톤이 넘는 12개 화강석을 직경 30미터 원형잔디밭에 시계 눈금처럼 둥그렇게 세운 작품에는, 돌기둥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기뻐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경배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아멘’이라는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다. 정 교수는 “내가 평생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감사하기 위해 기도로 드린 작품”이라며, 그 작품이야말로 자신의 인생 대표작이라고 꼽았다.

20톤이 넘는 12개 화강석을 깍아 만든 <Amen>은 정관모 교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감사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을만큼 혼신을 기울인 작품이다.
20톤이 넘는 12개 화강석을 깍아 만든 <Amen>은 정관모 교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감사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을만큼 혼신을 기울인 작품이다.

또 믿는 자들의 유택을 위해 2016년 완공된 <말씀의 숲>이라는 작품에는 창세기 3장 19절 말씀이 쓰여 있다. 또 그 작품 중앙에는 십자가 형태 조형물이 있고, 그 밑에 한줌 재를 뿌려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유택이 있다. 그 주변으로 설치된 넓은 공동의 판에 떠난 이의 이름과 그가 평생 애송했던 말씀 한 구절이 새겨진 명패를 붙여 기리는 작품이다.

“C 아트 뮤지엄의 묵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예수와 동행하며 그를 닮기를 노력하고, 깨달음이 있어 하나님께 감사한 후 십자가 아래 영면한다는 이야기를 대표적인 작품들로 설명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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