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그 이름은 영국의 조지 에베리스트 경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쓴다는 것은 서구 중심의 세상인 것 같아, 같은 동양 사람으로서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네팔에서 부르던 원래 이름은 ‘사가르마타’, 티베트어로는 ‘초모랑마’ 등 여러 이름이 있었다.

해발 8848m로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비행기 항로의 일반적 높이 정도다. 물론 대륙의 두 판이 서로 부딪혀 매년 3.8cm씩 높아지므로 조금씩 수정되기도 한다.

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전문적 등반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조차 ‘셰르파’라고 하는 등반 경험이 많은 현지 도우미들의 조력을 받는다. 높이도 높이지만 허리케인 수준의 바람에다, 견디기 힘든 강추위. 그리고 1년 내내 녹지 않는 눈 등, 이 모든 것을 이겨야만 등반에 성공한다. 다행히 등반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내려오다 위험한 일을 겪기도 한다.

네팔에 가면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할 때 트래킹 계획이 있다고 하면 보험인수를 거부당하는 곳이다. 산 근처만 가도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다가 지금까지 200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하니 얼마나 위험한 산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단순히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험하고 또 험한 산이다. 등반에는 엄청난 입장료도 내야 하는데 비용으로 따지면 그것만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 경제적 부담과 위험을 담보한 채 산행을 하는 이유가 뭔지 때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도 어떻게 보면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사람이다. 모세가 율법을 받은 곳이 높은 시내산이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길게 말씀하신 곳도 산꼭대기다. 그래서 ‘산상설교’라고 한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은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리라. 그래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마침내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도 난 오르다 주저앉고 또 올라보지도 못한 채 포기하는 모양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높고 험한 그 에베레스트에 돈 들여서 도전하는 등반가들보다 나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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