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호 목사(혜성교회)

목회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만나야 할 사람, 가야 할 자리,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납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도적 책무라 여겼는데 이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느낍니다. 새벽기도 시간이든, 개인기도 시간이든, 기도하기 위해 엎드리면 빨리 처리해야 할 일들과 연락해야 할 사람들만 떠오릅니다.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고 말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라는 설교는 남을 위한 가르침이 되어버립니다. 

기도의 자리는 나의 무능력을 확인받는 자리라 참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사람의 본능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해야 할 일에 마음이 먼저 가는 것은 거룩한 책임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기도의 자리에 머무는 거룩한 연합은 우리에게서도 드문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이 문제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총회와 관련된 일로 목사님들을 만날 때면 카페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만나기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내용의 대화가 많기 때문입니다. 공적 활동을 많이 하는 목사 장로일수록 소위 말해 은혜로운 이야기, 누가 들어도 칭찬할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문젯거리 아니면 욕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총회 일은 공교회적 헌신과 봉사’라는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그 일을 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해야 하는 줄 알지만 하지 않으면 더 좋은 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목사 장로에게 대한 성도들의 기대가 이렇게도 무게감 있고 어려운 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독신문> 4월 5일자 보도에 의하면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의 ‘2021 프레어 어게인 강단기도 운동’에 공식적으로 66개 노회, 1091개 교회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운동에 동참한 목사로서 이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군소리 없이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총회가 주선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일에 참여하는 목회자를 바라보는 성도들 누구도 의아해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프레어 어게인 운동은 은혜를 사모하고 하늘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과 연합하여 복음 사역자의 길을 가겠노라고 뜨거운 가슴과 눈물로 기도했던 신학교 시절 경험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첫 부임지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강단에 꿇어 엎드려 은혜를 갈망하던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특히나 총회 행사라고 하면 소수 특정인만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는 들러리가 되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많았는데, 이번 행사는 개인의 참여가 주체가 되는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모든 참여자들에게 보람과 의미를 전해주었습니다.

총회가 어떤 운동을 한다 한들 단기간에 이보다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말 없는 목사와 장로님들은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 해야 할 일을 하면 아무 소리 없이 힘껏 참여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단의 저력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목사 장로가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 상황이 또한 슬프기도 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목사 장로가 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써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프레어 어게인 운동이 일부 교권주의자들에게만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에 그치지 않고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원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에 더 열심을 내는 교단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람 모임에서는 발언하지 않더라도 기도를 거룩한 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는 탄식하는 목사 장로님들이 많아지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에 더 큰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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