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내외 이슈로 국내는 학폭 논란, 해외에서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슈는 ‘폭력’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나라 안팎에서 대두된 두 가지 폭력 앞에서 교회의 역할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교회가 절대 놓아서는 안 될 지점이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서 교회의 사명을 바라본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몇 해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투’와 ‘빚투’에 이어 2021년 현재 ‘학투’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홀로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나마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가 유명인일 경우에는 폭로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커다란 상처에 파묻힌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폭로한 이들 역시 아주 작은 숨통이 트였을 뿐, 그 상처가 지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길게는 수십 년간 깊게 패인 상처가 반짝 관심으로 치유될 리 만무하다.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마련과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결국 진정한 회복은 상처 받은 마음의 치유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곳이 바로 교회다. 교회는 홀로 고군분투하고 하고 있는 이들 곁에 서야 한다. 더 이상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이웃이 돼야 한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발표될 때마다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기독교를 넘어 종교 전체적으로도 탈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종교가,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가 절실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반등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의 필요가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라면 교회는 기꺼이 나서야 할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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